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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흥행 '스즈메의 문단속', 재난의 상흔을 돌아본 애니메이션

by 뉴스버스1 2023.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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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 영화칼럼니스트 

 

18일 연속 1위…누적관객 300만 코앞

메기 설화를 이용한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의 흥행 몰이가 심상치 않다. 지난 8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이 18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누적 관객도 25일 기준  265만 5,582명으로 300만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재난을 다루는 방식이 탁월한 애니메이션이다. 지진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떠올리는 대신, 메기 설화를 현대화한 판타지 장르를 통해 위로와 회복을 주고 있다. 스즈메가 재난 방지를 위해 문을 닫는 장소들은 일본에서 실제로 재난이 일어났던 장소다. 지진의 파괴력과 공포는 충분히 전달되지만, 지진은 일어나지 않는다. 스즈메가 토지시(재난이 못 나오도록 문을 닫는 사람) 소타와 함께 재난의 문을 닫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스즈메는 엄마의 부재를 인정하고 지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된다. 

아무래도 사전지식이 없는 관객은 서사에 대한 몰입과 공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도 토지시와 요석(要石-재앙을 막아주는 돌)을 가져와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방식은 관객에게 흥미와 재미를 더한다. 잊혀가는 기억을 환기하고, 경각심을 높이면서도 피해자에 대해서는 최대한 예우를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재난 표현의 방식이다.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보다 일본 특수성을 강조한 서사다.

출처: 미디어캐슬

현대화한 메기 설화  

한국, 일본,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메기가 지진을 일으킨다는 설화가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바다 속 굴에 사는 메기가 요동을 치면 바다에 해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또한, 메기가 굴에서 나가면 썰물이 되고, 메기가 굴에 들어오면 밀물이 된다고 한다(‘밀물썰물설화-한국민족문화대백과대사전’).  

일본에서는 땅 밑에는 거대한 메기가 살고 있다는 신화가 있다. 메기가 몸부림을 치면 지진이 일어난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카시마대명신이 카나메이시로 메기를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박병도 2012 '일본 지진신앙과 나마즈에 연구' 41). 카시마대명신은 카시마 신궁(신사)에서 제사를 모시는 신이고, 그 신은 다케미가즈치로 카시마의 신 또는 카시마대명신으로 알려져 있다(박병도 2012). 카나메이시는 요석이다. 즉 지진을 막기 위한 요석도 있고 요석을 누르는 신(神)이 존재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메기는 ‘미미즈’로, 요석은 고양이 ‘다이진’으로, 카시마대명신는 ‘토지시’로 대체했다. 미미즈(일본 열도 아래를 꿈틀거리는 거대한 힘)가 분출하면 지진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힘이 나오는 문을 닫는 토지시 소타가 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그 일을 가업으로 해오고 있다. 즉 이전에 다케미가즈치 신이 했던 일을 대신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신들이 했던 일을 현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렇게 일본 신화를 <스즈메의 문단속>의 서사에 녹여내고 있다.

출처: 쇼박스

스즈메의 구원 

고교생 스즈메는 실수로 재난의 문을 열면서, 이 모험에 참여하게 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에는 종종 한쪽이나 양쪽 부모가 부재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선 스즈메 엄마가 부재하다. 단순한 엄마 부재 뿐만아니라, 그녀가 살았던 삶의 터전(집, 동네, 학교등) 모든 것의 상실이다. 지진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이모가 살고 있는 규슈로 멀리 와서 새로운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녀는 엄마의 상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출처: 미디어캐슬

스즈메는 우연히 마주친 토지시 소타를 쫓아가다 폐허 속에 문을 보게 된다. 실수로 문을 열고, 또한 미미즈를 막고 있던 요석을 뽑아 미미즈가 나올 수 있게 된다. 스즈메는 다이진의 저주로 의자가 되어버린 소타를 도와 미미즈가 문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는다. 지진으로 죽은 엄마를 찾다가 저승의 장소에 발을 들인 스즈메는 그 경험 덕분에 ‘소타’를 구하고 어린 자신도 구원한다.

출처: 미디어캐슬

스즈메의 모험을 통해서 관객은 자연히 일본 전역의 재난 장소를 방문하게 된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관객은 재난의 현장을 방문하지만, 재난을 경험하진 않는다. 비록 재난 이전에 살았던 사람의 모습이나 생활상을 보여주지만, 재난의 모습을 과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지진을 경험하지 않은 관객에겐 미미즈의 힘을 통해 지진의 공포와 위력 그리고 지진 후의 참담함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아픈 상처를 지닌채 좌절하고 있을 많은 사람에게 스즈메를 통해 상처를 딛고 일어나도록 도와준다. 

일본에 특화된 서사

스즈메의 문단속은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전작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보다는 일본에 특화된 작품이다. 일본의 실제 재난 장소를 따라가며 서사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 지역에 대한 사전지식이 풍부하다면 이해가 좀 더 빠르고 깊었을 것이다. 스즈메가 살고 있는 규슈에서 시작해 에히메현, 고베, 도쿄를 지나 원래 스즈메가 살았던 도호쿠 지방의 이와테현까지 이동은 일본 관객에게는 많은 공감을 이끌었으리라 판단된다.

출처: 쇼박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 관객은 이 부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완전한 동조는 어려워 보인다. 영화를 보면서 어렴풋이 지진이 난 장소와의 연계성을 생각했다. 고베에서는 관동 대지진을, 마지막에는 동일본 대지진을 생각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잘 알려진 지진이 바로 동일본 대지진이다. 고베 대지진은 1995년 발생한 지진으로 동일본 대지진 전까지 가장 인명과 물적 피해가 컸다. 관동 대지진과는 달랐다. 

이번 애니메이션을 통해 한국과 일본인의 땅에 대한 기본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랜 옛날부터 지진을 경험해 온 일본인들은 땅을 믿지 않는다. 즉 땅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고, 갈라지고 무너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땅은 튼튼하며 웬만해서는 흔들리거나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적다. 물론 우리도 포항 및 경주 지진을 겪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은 땅에 대한 믿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도 일본과 한국 관객은 반응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재난 영화는 재난이 초래할 혹은 초래한 결과를 보여주면서 공포와 두려움을 조성하며, 이에 대한 대비를 촉구한다. 반면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딱딱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밝고 따뜻하게 이어간다. 그가 무거운 주제를 설화와 판타지 장르를 통해 무겁지 않게 전달하는 방식은 영화인들이 한 번쯤 고민해 볼 지점이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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