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라져버리는 의식과 시간을 가두는 전사(戰士)- 유혜정 작가

뉴스버스1 2022. 7. 2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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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택 칼럼니스트 

 

작가 유혜정 작품은 색이 뚜렷하고 선이 명료하다. 드로잉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선은 작가의 손에 실린 무게에 따라 굵어지거나 가늘어지며 대상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전체적으로 감각적이다. 

가족, 캔버스에 아크릴, 90.8*70.0 cm 30호 2017

세계 미술사를 근대와 현대로 구분 짓는 근대의 마지막 화가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는 ‘재현을 포기한다면 그 대가로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을 명료화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화면에서 제거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속에 잠재해 있는 관계를 단순화해야 한다.

작가는 말한다. “주제는 너무도 일반적이고 단순하다. 그렇게 많은 물음표와 해석이 필요하지 않다. 단지 배경에 집착하는 이유는 관계의 중요성, 보이지 않는 것들의 파동, 내 속에 맴도는 텍스트의 분출 때문이다. 구상이라 부르지만 추상을 뽑아보려 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각종 도상은 책과 라디오에서 가져온 글씨이다. 문양은 전통 건축인 사찰의 법당 단청 등에서 온 듯 보이나 명확하지는 않다. 바탕색 대신 타이포그래피(typography)가 깔린다. 작가가 말하는 관계는 색과 색, 공간과 공간 사이다. 대상이 배경이고, 배경이 대상이 된다.

회화는 구상(具象. figurative. figuratif)과 비구상(非具象. non-figurative. non-figuratif)으로 나뉜다. 형상(形象 = 이미지)이 뚜렷한 것이 구상이며, 그렇지 않은 것이 비구상이다. 추상(抽象)은 추출(abstraction)이다. 구상과 비구상에서 각각 추상이 뽑아져 나온다. 유혜정 회화는 구상을 바탕으로 한 추상화이기도 하다. 의식과 목적이 명확하다.

정진용 박사는, 형상 즉 이미지를 태(態)의 관점으로 형태(形態)와 상태(狀態)로 나누고 동양미술을 상태 우선이라 규정하였다. 형태는 시니피앙(significant, 記標), 상태는 시니피에(signifié, 記意)로 본다. 시니피앙은 표현 되어진 기호, 시니피에는 기호가 의미하는 내용이다. 

내 목소리. 캔버스에 종이, 아크릴, 116.8*91 cm 50호 2007

유혜정 작가에게 형상에서 본질을 뽑아내는 것은 취향이 아니다. 그러기에 작품에서 대상은 시니피에이고, 배경은 시니피앙일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도상과 문양이 강한 터치로 또렷하다. 배경이 대상을 부각시키기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모든 게 관계 속에 있다는 작가의 의식은 무늬를 만들어내는 작업, 종이 오려붙이기 (컷 아웃)로 옮겨온다. 캔버스 화폭 속 배경이 되는 도상과 문양이 작업실 창 유리에 질감을 가진 기호같이 단순한 형태를 가진 문양으로 들러붙는다. 대칭적 무늬인 데칼코마니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그 문양들 간에도 관계가 생기며 면을 채워나간다. 

함께 가는 길. 캔버스에 아크릴 73x60.5cm 2021

한국의 미술 대학은 여전히 서양화과와 동양화과를 구분해서 가르친다. 한국의 인문대학 서양사학과가 서양사만 가르치고 동양사나 한국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과 같다.

미술대학은 몸을 사용하여 무언가를 구현하는 과정이 체화되어야 한다. 무경계의 장르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하나 교수는 제한된 장르와 재료만을 가르친다. 

기성 작가들에게도 어느 대학 동양화니 서양화 전공이니 하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이는 작가와 작품에 대해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프레임이 되어 작가론과 작품론으로 굳어져 버린다. 

불과 10여년만에 동시대의 미디어와 경쟁 관계에 들어간 SNS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많은 이들이 타고 내리는 정거장이다. 유혜정 작가를 그 정거장에서 알게 되었다.

유혜정이 주로 그리는 대상은 계절의 변화와 장소에 따라 과거의 편린이 떠오르는 풍경보다는 계속하여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과 동물, 곤충도 좋다. 이들 존재간 등가의 구분이 없다. 이 모든 생명들이 다 같이, 함께 했으면 한다. 최근에 옮긴 작업실 또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플랫폼, 지하철 정거장 인근에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캔버스에 아크릴, 45.5*53cm 2021

작가는 ‘여백의 미의 반동분자’로 불리었다. 동양화 어법을 뒤집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화면 가득 채우기’(full painting)를 자신만의 화법으로 내세운다.

한편으로는 사람이 공간과 상호 작용을 하는 존재이기에 화면 속 상황과 사람과의 관계 변화를 사람에 배경을 투영시켜 표현한다. 

많은 작가들은 인물화에서 완결이라는 게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러다보니 작가가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를 구분 짓지 못해 스스로 애매모호한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작가는 안개 속을 헤쳐가는 무리의 향도라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동양화하는 사람들은 재료에 대한 미련과 강박이 있다. 전통을 계승한다는 측면도 알고 보면 전통도 아니다’(유혜정)

최고급 100% 천연 재료를 고집하며 과연 물성 자체에 무슨 정체성이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작가는 이러한 재료의 집착에서 벗어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상, 주변에서 보편적인 재료를 구해 작업을 했다. 아크릴 조차도 물성의 두께(마티에르) 조절을 하면 동양화의 깊이와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화면 위 두꺼운 물성이 작품의 밀도라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엎고 싶었다.

재료에서 자유로워진 유혜정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도 얽매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주제와 방향을 정해놓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했다. ‘여자’, ‘함께하는 삶-동행, 동반’ 등이 겨우 작가의 관념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요란하게 창을 때리는 비가 내리는 너머의 어두워진 주차장을, 벽을 타고 올라가 피었으나 비에 떨어져 버린 나팔 모양의 주황색 능소화 이파리와 같은 다시 오지 않을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살면서 잊혀지는 감정을 남겨놓고 싶다는 욕구 또한 강렬하다.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보편적인 것을 사랑으로 본다. 사랑은 한없이 연약하기에 아무리 진하고 깊어도 결국 스쳐 지나간다. 

대화, 캔버스에 아크릴, 80*116.5 cm 50호 2018

언어는 불완전한 도구이다. 우리는 같은 시니피앙(기표)을 주고받지만 각자가 공유하는 시니피에(기의)는 다르다. 언어는 소통을 가능케 하는 도구이자 동시에 훼방하는 요소이다. 언어는 총체적 존재로서의 실재가 아니라 실재의 어떤 양상만을 추상화·일반화하거나 또는 일정한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실재를 왜곡한다. 

소통에서 중요한 건 상대방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중요하다. 드러낸 욕망이 진짜 욕망이 아니더라도,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이야기는 억압을 드러내고 해소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소통은 사랑이며 그 사랑의 본질은 따뜻함과 그리움이다.

유혜정에게 그림은 사라져 버리고 마는 의식과 시간을 멈추고 가두는 처절한 몸부림의 흔적이다. 

무엇이 나올까. 캔버스에 아크릴, 40.9*27.3 cm 6호 2011

그림은 생각을 강요하거나 깊이, 무게를 측정하는 게 아니다. 보는 이에게 그러한 상상이 가능한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 본다. 그림에서 제목과 방식은 형식적 선택일 뿐이다.

그림이 캔버스에만 머물러야 된다고 보지 않는다. 유혜정 회화는 스펙트럼이 넓다. 양복의 안감, 소파 위 퀼트 방석 등 겉으로 드러나면 조금 부담스러운 장면들을 생활 곳곳에 그리고 싶어한다.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사랑의 행위조차도 잃어버리고 살고 있지 않나, 예술적 표현에는 오로지 미학만 있을 뿐이어야 되지 않냐고 고민한다. 금기를 깨는 전사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려는 예술가이고 싶어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적품들은 ‘풍경 밖’(3차원 현실)과 ‘캔버스 풍경’(2차원 이미지)이 이어져 어느 것이 더 현실인지 혼란스럽다. ‘실재와 이미지의 혼동’ 시뮬라시옹은 마그리트의 회화 주제였다.

유혜정은 ‘풍경 밖’에 임의로 그린 이미지를 ‘캔버스 풍경’으로 가져온다. 작업실과 저자 거리는 이어져 있지 않고 단절된다.

필자가 그녀의 작업실에 초대받아 인터뷰를 했으나 가져 나온 것 이라곤 공간의 아우라와 문 밖에 나가지 못해 허공을 떠돌던 파편적인 몇 마디의 말들, 이후 원고를 쓰면서 인터넷으로 받은 작품 사진들 뿐이다. 

연리지2 캔버스에 아크릴 97×130.3cm 2020

남녀의 사랑을,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한 나무처럼 자라는 형상인 연리지(連理枝)로 의인화했다. 풍속에서도 연리지는 남녀 사이 애정이 진한 것을 비유한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 1961)은 ‘우리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으며, 그보다는 ‘콤플렉스가 우리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무의식을 잊을 수 있지만, 무의식은 우리를 잊지 않는다. 

잊고 있는 남겨진 이야기는 어떻게든 그 못 다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시간을 타고 우리에게 되돌아와 그 얼룩을 드러낸다. 이를 감싸 안는 방법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남이라는 불편한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며 프로이트가 말한 ‘대양적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자신의 환자들에게 정신분석의 목표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히스테리적 비참을 빛과 어둠이 함께 있는 ‘일상의 불행’ 정도로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모든 치유 서사의 결말은 언제나 외부로 밀려난 사물을 다시 내 안으로 통합하여 대양적 감성을 회복하는 길로 이어진다. 유혜정에게는 그림 또한 오로지 그러하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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