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아트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 - 정진경

뉴스버스1 2022. 8. 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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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택 칼럼니스트 

 

전시 'THE BLUE BIRD', 경남 창원시 갤러리 바인딩에서 12일까지

직업을 콕 집어 말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과거의 이력에서 한 가지 맥락으로 도출하기 힘들 때는 현재 무엇에 집중하고 있느냐를 파악해야 한다.  

Welcome Home /부분 컷/일상은 아름다워 2021 / 사진제공 = 정진경 작가

정진경 작가는 아기자기한 작업을 한다고 말한다. 결혼을 했고, 출산, 육아 과정을 거쳐 아이들을 기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주변의 환경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작업하고 있는 관객 참여형 설치작품인 프로젝트 기반의 “집/Home”은 ‘가족’, ‘집’을 새롭게 상기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현대 사회의 가족은 유리 그룻과도 같다. 정진경의 관심은 부부가 중심이 된 소위 정상가족에 초점이 두어진다.

작품 ‘웰컴 홈’(Welcome Home)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여자가 빈집에 혼자 들어와 잠이 들고 잠든 주위로 가구들은 깨어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꽃을 피워내듯 드러낸다. 여자의 꿈이 깨면 다시 집은 잠이 든다.” 이 작업은 작가의 시점에서 주인공인 여자만의 환상을 꿈을 비유하여 만들었으며 꿈과 현실의 차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프로젝션 맵핑 영상 기술을 사용하였다. 

파랑새 설치+영상 2022. 우양미술관 전시 / 사진제공 = 정진경 작가

<파랑새>(THE BLUE BIRD)는 영상미디어 설치 작업으로 동화책을 보는 것 같은 이미지로 만든 작업이다.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파랑새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공간 안에 표현하려 했다. 

벨기에 극작가이자 시인인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희극 ‘파랑새’(1909)에는 주인공 남매 틸틸(Tyltyl)과 미틸(Mytyl)있다. 우리에게는 일본 번역본에서 음차한 치르치르, 미치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타 문화 장르를 차용한 미술 작업이 어떤 미학적 가치를 부여하느냐의 문제는 남아있다. 궁극적으로 미술은 아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구현하는 매개라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 이야기와 무대를 합체해서 설치 작품으로 만들었다. 

대형 성당에나 어울릴 오르겔(Orgel. 파이프 오르간)이 풍금 크기로 제작되어 설치된 것과 유사하다. 이동식 작은 오르겔은 작업 공정이 훨씬 어렵다. 소리를 위해 파이프 길이를 줄일 수는 없고 작은 뼈대에 내장해야 하기에 트롬본이나 트럼펫처럼 관을 꺾는 정밀한 작업 공정이 필요하다.

설치 작품은 장소 가변적이다. <파랑새>는 내년 서울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 에게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고도(Godot)를 기다리며’는 부조리 극의 백미로 평가 받는다. 황량한 무대를 배경으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50년째 고도를 기다린다. 하지만 연극의 맨 마지막에야 고도는 전령 편에 ‘오늘은 사정상 못 오고 내일은 꼭 온다’는 전갈만 남긴 채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고도를 기다리며’와 ‘파랑새’는 이야기의 맥락이 같다. 

최근의 작업이 보여주듯이 정진경의 작품은 제 3자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에 심취해 있다. 작가는 한 때 자신의 몸이 작품인 적이 있었다. 그 변화의 과정은 누구나 그러하듯이 체험과 자각이다.

정진경은 경남대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인체 토르소 정도를 조각으로 알던 작가는 일본 나고야대학 교환 학생으로 가서 국제적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체험했고, 순수미술 장르로 알았던 도예과에서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것도 보았다. 나고야 시에서 30분 거리에는 세계적 기업 ‘도요타 자동차’ 본사가 있다. 

국내에서는 싸이월드가 유행할 때인 2000년대 초반, 일본 작가들은 컴퓨터로 작업, 어렵게만 보였던 미디어 작품들을 쉽게 내놓았다. 

미국 뉴욕 프랫에 재학중 일 때인 2008년, 서슬 퍼런 붓으로 온 몸에 금강경 구절을 쓰고 씻어내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Washing my sin 2008. / 사진 Alejandro 4 Barragan / 사진제공 = 정진경 작가

금강경의 내용을 알고 한 행위가 아니다. 그냥 한 번 해 보는 게 어떨까? 좋겠지하는 마음으로 저질렀다. 비예술인들이 살면서 결기를 다지는 행위는 삭발이나 단식이 있다. 예술가는 그 목적성이 명확하다. 기억과 역사를 되새기는 행위만으로도 강한 문제 제기를 한다.

1967년,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이 누드로 첼로를 연주했던 그 유명한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로 백남준은 ‘클래식은 성스러워야 한다’는 통념을 깼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의 격전지였던 과달카날 섬에서 역시 샬롯 무어만과 평화를 위한 퍼포먼스를 한다. <과달카날 레퀴엠>(1977)은 전쟁 당시의 미디어 이미지들과 빠른 속도로 교차 편집된 영상은 백남준의 작품 중 가장 정치적이라고 평가 받는다.

독일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1892~1940)이 히틀러 시대의 파시스트 정치미학을 분석하며 개념화한 테제로 ‘미학의 정치화’(예술의 정치화)가 있다. 미학의 정치화는 무언가를 드러내고 표현함으로써 현실을 ‘극복하게’ 한다. 정진경이 극복하려고 했던  (사회적) 현실이 무엇이었는가. 

미학의 정치화(정치화된 미학)의 핵심은 대중의 익숙한 감성 구조에 균열을 냄으로써 보이지 않던 존재를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들리게 한다.  그녀의 퍼포먼스는 사진으로 남겨졌고 2019년 국내에서 이어진다. 

Washing my sin 퍼포먼스 문자문명전 2019년 / 사진제공 = 정진경 작가

정진경의 행위는 몸에 새겨 넣는 행위인 문신(타투)과 비교 가능하다. 2017년 독일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서는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타투를 권하는 마이클 스미스(Michael Smith)의 타투숍 ‘Not Quite Under_Ground’이 작품으로 나왔다. 65세로 한정한 것은 타투는 시간이 지나면서 모양이 변형되는 문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뉴욕에서의 퍼포먼스가 정진경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몸을 이용한 참여형 퍼포먼스가 자신이 공부한 조각의 영역을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퍼포먼스는 몸으로 표현하는 미술 행위이다. 정진경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당시 그녀가 뉴욕에서 이해한 이슬람은 무언가의 죄를 써서 불로 태워 마시는 행위는 속죄 의미였다. 

개인적 동기, 예술적 행위, 종교적 제사가 합쳐진 독특한 행위 예술이 결합된 형태였다. 그 녀의 이러한 사고는 공사장 인근을 지나다 발견한 공업용 애나멜을 드로잉의 재료로도 적용, 강렬한 인체 드로잉 이미지를 구축하는 작업과도 맥을 같이한다. 

정진경이 의도한 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경험의 공유였으나 디지털 시대의 미술은 결국은 이미지로 남고 이미지로 향유되며 이미지로 평가 받는다. 

작가는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경구나 좋은 문구를 ‘적어라’라는 얘기를 반복해서 들었다. 손 바닥에다 볼펜으로 메모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잔뜩 메모 후 수세미로 씻어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했다. 원하지 않았던 행위를 하고 난 이후의 카타르시스 해소였던 셈이다.

산업화 시대는 학교, 직장 생활에서 노트 필기, 수첩 메모가 그 사람의 능력을 좌우했다. 회의라는 명분의 윗 사람들의 난삽하기만 한 일방적 지시를 ‘마치 신이 내려주는 말씀’처럼 소중하게 받아 적고 실천하는가가 사회경쟁력이 되었다. 

군사독재 정권, 병영 국가였던 한국 사회는 전후방 대대 단위 급 부대까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회의를 했다. 훈련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간부들은 한 손에 지금의 노트북 반만한 크기의 업무수첩을 소중하게 들고 다녔다. 국내 최대의 재벌 기업은 전 직원에게 좀 더 슬림화한 동일한 디자인의 수첩을 나누어주곤 했다.

정진경은 대학 교수인 부친을 따라 2~7살을 미국 플로리다와 애틀랜타 일대에서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의도적으로 영어를 잊어버리도록 노력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한창 의식이 형성되던 시기 (느닷없는) 미국에서 귀국한 7살 이후 ‘나’, ‘우리’를 이해하는 게 힘들었다. 주변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의사 소통보다는 그림이 가장 편했다. 미술을 도구로 살아가고 싶은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고교 시절 다시 미국에 1년을 나가 있었다. 

그녀는 2004년 이후 대학원 입학 준비기간을 포함해 뉴욕 체류 시절을 공부하겠다는 의식보다는 예술적 맛은 다 맛보아야겠다고 방향을 정했다. 조각에서 출발한 그녀의 창작 활동은 자연스럽게 설치로 흘러갔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다 닿은 지점이다.

종이에 하는 모든 미술적 행위를 드로잉으로 이해하던 시절, 금속을 소재로 한 레터링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드로잉은 종이든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2015년, 2016년 대만과 태국에서의 창작스튜디오 체류 경험으로 작가로서는 엄청난 양분을 받아들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2017년 서울도시 건축비엔날레,” Three Cities”- 믹스미디어 설치 / 사진 제공 = 정진경 작가

정진경에게는 건축 관련 협업 경험들이 많다. 2017년 서울도시 건축비엔날레,” Three Cities”,아트디렉터로 참가했다. 구 마산, 진해가 합쳐진 제조업 기반도시 창원시를 조망하는 전시였다. 건축가(박진석 경남대 교수)가 만들어 놓은 틀에 미술가의 관점이 더해졌다. 컨텐츠를 구조물이든 뭐든 어떤 설치물로 만들어볼까 하는 협업이었다.

부산 봉곡동 재개발지역 wall painting 2018

2018년 부산 봉곡동 재개발지역, 본격적으로 철거를 하기 전 사람들이 떠난 모습 그대로가 있었다. 공간의 주인공들이 부재한, 흔적들만 가지고 작업이 이루어졌다. 건물주들은 저 건너편 아파트로 갔을 것이고 재개발이 끝난 후 돌아오겠지만 세입자들은 고단한 삶을 끌고 또 다른 곳으로 이주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정진경은 자신을 예술을 가지고 대화하는 ‘아트 커뮤니케이터’, 믹스미디어 작가라고 말한다. 창원시 가로수길 가로 뒷편 주택가에 위치해있는 작가의 작업실 바로 맞은편 갤러리 바인딩에서 <THE BLUE BIRD> 전시가 8월12일까지 열린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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