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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미국도 '박정훈 대령'들이 나라 구했다

뉴스버스1 2023. 8. 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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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미국도 '박정훈 대령'들이 나라 구했다 < 이상연 애틀랜타 통신 < 이슈 < 기사본문 - 뉴스버스(Newsverse)

애틀랜타 이상연 기자 

 

은폐된 진실 공개해 군인들 생명 지킨 참 군인들

지난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으로 승조원 5,000명이 집단감염 사태를 겪었던 미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의 함장 브렛 크로지어 대령은 해군 본부에 “내 부하들을 살려달라”는 간절한 보고서를 보냈다.

당시 해군은 “코로나19에 감염된 승조원들은 선내 격리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했지만 루즈벨트호는 승조원 600명 이상이 순식간에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이같은 조치가 불가능해졌다. 크로지어 함장은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다”면서 “운항을 당장 중지하고 승조원 대부분을 하선시켜 2주간 격리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미 항공모함 루즈벨트호 함장 브렛 크로지어가 루즈벨트호에서 연설하는 모습. (US Navy Photo)

이 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돼 군의 코로나 대책을 비판하는 여론이 커지자 해군은 곧바로 괌에 루즈벨트호를 정박시키고 감염된 승조원들을 하선시켰다. 하지만 해군장관 대행이었던 토마스 모들리는 군사기밀을 유출했다며 크로지어 함장을 직위해제했고, 그래도 분이 안풀렸는지 직접 루즈벨트호로 날아가 승조원들에게 “크로지어는 함장을 맡기에는 너무 순진하고, 멍청하다”는 독설을 날렸다.

그런데 크로지어 함장을 지지했던 부하들은 모들리의 연설을 녹음해 공개했고, 모들리는 그 다음날 해임됐다. 크로지어 함장이 하선하는 날 부하들은 한 목소리로 ‘캡틴 크로지어’를 연호하며 경의를 표했다. 이후 복직에는 실패했지만 크로지어 함장은 적군의 총탄 대신 코로나 바이러스에 애꿎게 희생될 뻔한 수많은 군인들의 생명을 구한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다.

미 국방부 소속이었던 대니얼 엘즈버그는 1971년 1급 군사기밀이었던 ‘펜타곤 페이퍼’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제공해 베트남전 개입을 위해 대통령과 행정부가 저지른 진실 은폐의 ‘민낯’을 알렸다. 이 폭로를 통해 존 F. 케네디부터 리처드 닉슨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이 국민들을 어떻게 속여왔는지 낱낱이 공개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국민들이 권력에 대한 감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고, 언론 자유가 그 어느 가치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엘즈버그는 훗날 당시의 심정을 회상하며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전쟁을 끝내 무고한 군인들의 생명을 구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이 같은 다짐을 한 군인이 등장했다. 해병대 수사단장을 맡아 고(故) 채수근 상병의 사망사건을 조사했던 박정훈 대령이다. 그는 적법하게 마무리한 수사 결과를 역시 법에 따라 경찰에 이첩했다는 이유만으로 항명 수괴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로 입건됐다.

박정훈 대령은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가 해병대의 핵심 가치이고 충성과 정직이 해병대 정신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해병대원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를 했기에 내일 죽어도 좋다고 각오했다”고 말했다. 박 대령은 수사 결과를 바꾸기 위해 가해진 상부의 압력과 부당한 지시를 모두 공개한 뒤 “아들에게도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충성하고, 부하와 동료를 지키는 참 군인은 국경을 뛰어넘어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무엇보다 정의와 자유를 위해 숨겨진 진실을 공개해 권력이 아닌, 국민에 충성하는 군인은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박정훈 대령의 용기가 한국 국민들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상연은 1994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특별취재부 사회부 경제부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2005년 미국 조지아대학교(UGA)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애틀랜타와 미주 한인 사회를 커버하는 애틀랜타 K 미디어 그룹을 설립해 현재 대표 기자로 재직 중이며, 뉴스버스 객원특파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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