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이여진’, ‘전현무’의 막판 고심…과연 누구 손 잡을까
안중근, '국민의힘 집권 저지냐, 민주당 정권 심판이냐'
이여진, '윤석열을 막을 것이냐, 내로남불 심판 소신이냐'
전현무, '약점 만회 일할 후보냐, 머리 빌려 일할 후보냐'
3월 4일~5일 실시된 제20대 대선 사전투표 참가율은 36.9%다. 2017년 대선의 26.06%, 2020년 총선의 26.69%를 훌쩍 뛰어넘었다. 최종투표율은 지켜봐야 알겠지만 ‘낮다’고 평가할 수 없는 수준일 것 같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 투표율이 저조할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이 빗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번 대선은 비호감 대선이 아니다”라는 말이 맞는 것도 아니다. 정치평론가 김민하 씨의 저서 제목대로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한국정치의 현주소이다. 특정후보의 낙선을 향한 강력한 의지도 투표율을 높인다.
사전투표가 끝나고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3일동안 선거운동은 추가로 더 진행된다. 이번 대선 투표율이 2012년, 2017년 대선과 비슷한 75~78% 수준이라면, 사전투표자보다 더 많은 인원이 3월 9일 투표소를 찾는다. 그중 결심이 확고하게 선 사람들이 적잖겠지만, 여전히 고민 중인 사람들도 있다.
막판 고심중인 사람들이 어느 계층에 상대적으로 많은지는 여론조사로 드러난다. 이재명 후보는 호남, 40대와 50대, 사무직, 자신을 진보라고 규정하는 쪽에서 강세고, 윤석열 후보는 영남, 60대 이상과 2030세대 남성, 주부, 농민과 주부, 자신을 보수라고 규정하는 쪽에서 강세다. 중부권 거주자, 2030 여성, 자영업자, 자신을 중도나 무당층으로 규정하는 이들 중 고심층이 두텁다는 것이다.
막판까지 고심하는 유권자의 모습을 ‘안중근’, ‘이여진’, ‘전현무’, 세 가상 캐릭터로 만들어보았다. 이들의 독백을 통해 선거 막판의 변수를 짚어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안중근 : 안철수 지지 / 중부권 거주 중도층 / 중소기업 근무
나, 안중근은 30대 중반 남성이며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하나가 있다. 서울 태생이며 지금은 충청권에 있는 중소기업에서 근무중이다. 내가 성인이 되던 무렵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고, 취업하던 무렵 촛불집회와 함께 박근혜 정부가 막을 내렸다. 이공계 전공이었던 나는 문과 사람들보다는 정치 관심도가 낮은 편이기는 하다. 그래도 20대 내내 ‘새누리당만큼은 아니다’, 이런 소신만큼은 갖고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에는 여러 모로 불만이 깊다. 서울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여기서 집을 구하는 것도 몹시 어렵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현실을 제대로 안다는 인상을 받은 적도 별로 없다. ‘진보’라고 하면 대기업-중소기업 격차를 줄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이다. 다만 문 정권의 정책 우선순위는 확실히 경제는 아니었다. 그놈의 ‘검찰개혁’ 얘기는 지겹다.
그래서 과학이나 경제 문제에 식견이 있는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다. 3등을 하더라도 그쪽에 투표하려 했는데… 그의 ‘철수’에 뒤통수를 맞았다. 민주당 정권을 심판하려면 윤석열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데, 윤 후보가 무능한 건 사실인 것 같다. 이재명 후보는 문 대통령이나 윤 후보보다 확실히 유능해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민주당이라니, 그 나물에 그 밥일 것 같다.
이여진 : 20대 여성 진보 성향
나, 이여진은 20대 중반 여성이다. 한창 하던 아르바이트를 접고 취업준비에 들어가려고 한다. 주변에 남자애들이 툭하면 “너 페미냐?”고 묻는데, 나 페미 맞다. 그렇다고 페미니즘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알바하면서 노동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월세 사느라 자연히 주거권에도 관심이 있다. 반려동물을 집에서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동물권에도 관심이 있다. 나는 분명 ‘진보’다.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민주당 유명 인사들의 성폭력 사건과 그를 처리하는 모습을 보며 기대를 접었다. 국민의힘이 입만 열면 ‘빻은 소리’를 하며 여성을 불쾌하게 만드는 '60대 꼰대' 같다면, 민주당은 말로는 신사적으로 하면서 뒤로는 이상한 짓을 하는 '40대 꼰대' 같다. 이재명 후보 개인에게도 믿음이 안 간다. 그는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단어를 써가며 형수에게 욕설을 하고, 조카의 ‘교제살인’을 ‘심신미약’이라고 변호한 사람이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성향의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씩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힘 집권이 두려워서다. 윤석열 후보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막말을 하고, 그 당의 대표는 집요하게 젠더 문제를 공격해대는 인물이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정책이 반(反)여성적인 것은 아니다. 윤석열을 막는 선택을 해야 하나, 아니면 소신을 강력히 표해야 하나.
전현무 : 전·현직 대통령들을 탄생시킨 무당파
나, 전현무는 올해 환갑을 맞이했다. 서울 지역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다. 4050과 노년층 사이에 있는 우리 나이 또래가 바로, 유력 두 후보 지지가 팽팽히 맞서는 ‘정치적 38선’일 것이다. 그런데 두 후보를 지지하는 내 주변 사람들은 지지 강도가 별로 강하지 않다. 우리 또래엔 무당파가 많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무당파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모두 내가 찍은 대통령들이다. 노무현 정부를 겪고 나서 “역시 경제는 보수인가” 싶었다. 총선,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을 곧잘 찍었지만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새누리당을 찍었다. 하지만 박근혜 씨가 탄핵되면서 선택을 후회했다. 그리고 문 정권을 겪으면서 나의 감정은 복합적이다. 말만 많을 뿐 결과를 내지 못하는 민주당 정권이 끝나길 바라면서도, 국민의힘이 다시 집권해도 되는지 회의적이다.
그러나 제3 후보는 찍을 생각이 없다. 비례대표 투표면 몰라도 대선에서는 사표가 되니까. 둘 중 누구라도 찍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인간적인 결점이 있어 보인다. 윤석열 후보는 식견이 너무 부족한 듯하다. 그래도 누가 되든 나라가 크게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약점이 많이 잡힌 대통령은 오히려 열심히 일해서 만회하려고 할 것이다. 식견이 부족한 대통령도 정당, 정치인, 관료들에게 ‘머리를 잘 빌린다’면 국정 운영을 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