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현탁 여행작가
새 정부 청와대 개방 직전, 문 대통령 북악산 남측 개방
최근 개방 북악산 남측에 법흥사터 만세동방약수터 자리
청와대 2시간 간격 6,500명씩, 하루 3만9,000명 관람
2022년 4월 6일부터 청와대 뒷산 북악산 남측 사면이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출신 테러분자들이 청와대를 습격한 이후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전체가 금단의 땅이 되었다.
함께 넘어 온 31명의 무장공비들 중 28명은 사살되고 2명은 도주하였으나, 1명이 생포되어 침투 내막이 밝혀졌다. 정확히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이후 많은 군인들과 무기들이 청와대를 방어하기 위해 ‘메의 눈’ 역할을 했을 것이며, 지역 전체가 요새화되어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2007년 식목일을 계기로 창의문에서 숙정문에 이르는 한양도성길이 개방되어, 일반인들도 신원확인절차를 거친 후 탐방할 수 있었다. 개방하는 날 노무현 대통령이 다녀가셨다는 기록이 숙정문 탐방길에 세워져있다.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북악산 개방을 공약한 문재인후보가 당선되어, 2020년 북악산 북측사면이 개방되었다. 정해진 탐방로를 따라 걷는 것이며, 통로 옆에는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 곳곳에 세워져있다.
2020년부터는 신분확인 절차 없이 통행이 허용되었는데, 아마 탐방로를 따라 설치한 폐쇄회로TV(CCTV)가 보초병 역할을 대신했을 것이다. 나는 2009년과 2020년 한양도성길을 탐방하였으며, 남측 사면은 일반 개방 다음날 대통령께서 탐방하셨던 길을 따라 다녀왔다. CCTV외에도 곳곳에 탐조등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유사시에는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움직이는 물체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산의 이름이 북악산 또는 백악산으로 모두 큰 산을 뜻하는 ‘岳(악)’자가 들어가 있는데, 해발은 342m에 불과하지만, 지세는 상당히 험한 편이다. 특히 남쪽 사면은 경사가 급하고 흙도 얕아 풀이 많이 자라지 않으며,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나무 데크로 설치한 탐방로 주위에는 비바람에 땅이 드러나고 푸석한 모래흙이 대부분이었다.
제20대 대통령 당선자가 근무처를 청와대가 아닌 용산 국방부 청사로 발표하고, 취임일인 5월 10일부터 청와대를 일반에게 공개하겠다고 발표하여, 청와대와 북악산 개방이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일부 시민들은 SNS에서 5월 10일 청와대 관람을 공언하기도 하였다. 이번의 북악산 남측 면 공개가 이러한 청와대 공개 결정 와중에 시행되어 ‘새 대통령의 청와대 공개를 김 빼기하는 것일까, 물 타기하는 것일까?’라는 논란까지 불러왔다.
청와대 뒷산 공개는 4월 6일부터 시행하였지만 3km에 이르는 탐방로 공사는 오래 전부터 했을 것이다. 공사가 완공되었으니 공개 시행시기만이 문제였을 뿐이므로, 그것을 ‘선수 치기 또는 김 빼기냐?, 물 타기냐?’의 단순한 논쟁거리로 치부하는 것은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 개방과 동시에 북악산 남측 면을 개방토록 했더라면 새 대통령에게는 청와대 개방을 통한 긍정의 이미지를 더 얹어 줬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김빼기란 지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반면 공약한 대로 공사를 다 해 놓고, 자신의 임기 중에 공개하는 것을 ‘물 타기’로만 몰아가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다.
북악산 탐방안내소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 택시를 타고 삼청공원으로 가자고 한 후, ‘대통령께서 오른 북악산 남측 코스 안내소를 아느냐?’고 물으니 모른단다. 그러면서 “당선자가 취임일부터 청와대를 공개한다고 하니까 ‘물 타기’한 것이지요”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공원 인근에서 내려 택배 기사에게 물으니 모른단다. 종로 마을버스11번 종점으로 가 기사에게 물으니 건너편 삼청테니스코트 쪽에 새로 만든 데크길을 따라가면 된다고 한다.
안내소에 이르는 데크길은 만들어 놓았으나 주변 공원은 정리 공사로 파헤쳐져 있고 인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안내소를 지나서 부터의 탐방로에는 공사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몇 군데의 휴게 장소도 개방직전에 만든 것이 아니었다. 만들어 놓았지만 공개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길은 대부분이 나무 데크나 돌계단으로 되어 있다. 탐방로 밖을 벗어날 수 없도록 막아 놓았고,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 통로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또 어딘 가에서는 모니터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청와대가 일반에 공개되고 나면 감시 장비를 철거하겠지만 그 때까지는 자동녹화 장비가 작동될 것이다. 생각보다 보초요원들은 눈에 많이 띠지 않았다.
한양도성 북악구간 1.21사태 소나무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는데, 내려올 때는 경사가 급하고 계단이 많아 등산용 지팡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무릎에 신호가 왔다. 이번에 개방된 탐방로 중 ‘만세동방(萬世東方)’이란 약수터와 법흥사 터에서 잠시 쉬었다. 두 곳 모두 대통령 내외분께서 쉬었던 곳으로 사진이 보도되었는데, 법흥사 터 연꽃 무늬 주춧돌에 앉은 장면 때문에 불교계의 항의로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일전의 보도를 보니, 만세동방 약수터에서는 등반객들이 음용수 시험을 거치지도 않은 약수탕 물을 마셔 접근할 수 없도록 줄을 쳐 막아 놓았다.
‘만세동방’은 ‘나라의 번창과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뜻이라니, 북악산 자락이 풍수지리상으로는 ‘좋은 터’인 모양이다. 정부수립 후 북악산 남측 자락이 대통령의 근무처와 관저가 된 것이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 경내 대통령관저에는 풍수지리상으로 명당이라는 의미로 고종 때 경복궁 후원을 조성하면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글자까지 바위에 새겼다.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개방에 이어 5월 10일부터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가 위치한 청와대 경내가 개방된다고 한다. 5월9일 까지 국가의 핵심기능이 수행되어야 함으로 다음 날부터 당장 전체 시설이 공개되기는 힘들 것이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와대이전TF 홈페이지에도 여러 메뉴가 완성되지 않았고 공개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경내를 거처 뒷산인 북악산을 오르는 탐방로 역시 아직 확정, 공개되지 않고 있다. 경무대가 들어서기 전 한양의 백성들은 북악산에서 나무하고 산을 오르내려 나름대로 길은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그곳에서 그 옛날처럼 나무하고 풀 벨 일은 없겠지만, 반세기 이상 막혔던 만큼 새로 길을 내고 연결하여야 한다.
당연히 청와대 경내에서는 과거 여러 대통령의 생활 단면도 엿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청와대 활용과 관련한 마스터플랜이 확정되어야 한다. 있는 시설만을 활용할 것인지, 그 안에는 무엇을 담을 것인지, 또 박물관으로 할 것인지, 기념관으로 꾸밀 것인지 등등 기본 성격부터 논의하고 단계적으로 확충, 보완하여야 할 것이다. 드나들 수 있게 했다는 것만으로는 개방의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 따라서 당분간은 경내 시설물의 내부 관람보다는 시설물의 용도, 경내유적, 지나온 역사 등을 살펴보는 형태가 될 것이다.
4월 27일 오전 10시부터 관람신청을 받는데, 관람 희망일 9일 전까지 신청하면 추첨으로 결정하여 당첨된 신청자에게만 통보한다고 한다. 첫날인 5월 10일은 12시, 14시, 16시, 18시 네 번에 걸쳐 관람을 허용하고, 5월 11일부터 21일까지는 07시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6회 관람이 실시된다. 2시간 마다 6.500명씩, 하루 39,000명 규모로 입장토록 할 계획이어서 초기에는 상당한 대기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를 관람한 후, 뒷산인 북악산을 오르는 것은 구체적인 안이 확정된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어찌됐든 대통령 집무실과 거처를 살펴보면서 지난 역사와 거처 간 분들의 노고를 되새겨보고 지난 역사를 성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전율을 느낀다. 지난 날 그곳에서 근무하였던 사람은 물론, 업무상 자주 들락거렸던 사람에게는 저마다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고 아쉬움을 토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였던 국민들 역시 자신이 뽑았는지의 여부를 떠나 지난 대통령들의 잘잘못에 대해 의견이 없을 수 없다. 그분들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기고, 청와대 관람에 나서는 모두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뭔가 기여하겠다는 다짐의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청와대와 북악산을 자유롭게 다니고, 나아가 백두산 천지에서 한라산 백록담까지 아무런 제약 없이 오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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