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민 정치평론가
언론도 거대 양당정치 온존시키는 포퓰리즘 세태 한 몫
무투표 당선자 선거운동·투표지인쇄 금지는 유권자 알권리 제한
“이번 선거에서는 서울에서만 구의원 후보 107명의 당선이 이미 확정됐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단독 출마나 경쟁자 사퇴 등으로 무투표 당선자가 속출한 것인데, 왜 세금을 써가며 이런 선거를 치르는지 의아함이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간조선> 제2709호에 실린 정장열 기자의 <너무 뚱뚱한 지방선거>이다. 무투표 당선을 두고 왜 ‘세금을 써가며’라는 표현이 나오는지 의아하다. 무투표 당선된 후보는 선거일까지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다. 선거법상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투표지 인쇄도 없다. 세금을 아끼게 된 것이다. 필요한 일은 ‘세금을 써가며’ 해야 하는데, 선거도 그렇다. 그렇지 못해서 그른 것이다.
지난 5월 14일 6.1 지방선거 후보등록이 마감됐는데, 대규모 무투표 당선 상태가 일어났다. 이번 지방선거 최대 사건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원인을 헛짚고 있고, 언론이 이 사태의 주범 중 하나임에도 이를 인식하고 자성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6.1 전국동시지방선거 무투표 당선자 509명…역대 최대
이번 전국동시지방선거 무투표 당선자는 509명으로 321개 선거구에서 발생했다. 그 유형은 크게 네 가지다. ⓛ기초지방자치단체장 선거 ②광역의회의원 지역구 선거 ③기초의회의원 비례대표 선거 ④기초의회의원 지역구 선거. ⓛ, ②, ③은 대부분 영남과 호남처럼 특정 1개 정당이 크게 앞서 나가는 지역들이다. 이를 두고 “영남(호남)은 왜 그래?”라고 비웃을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④는 주로 수도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과 ②는 1등만 당선되는 제도를 띠고 있다. 1등할 것이 명약관화해보이는 선거구에서는 다른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자가 나오기 어렵다. 그나마 국회의원 선거구는 넓어서 후보 한 명을 찾기도 쉽고 정당 홍보 효과도 크지만, 광역의원 선거는 그만한 보람이 없다. 경북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낮은 축에 속하며 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을 배출한 바 있는 구미와 포항을 보자. 그런데도 구미 광역의원 선거구 8곳 중 2곳, 포항 광역의원 선거구 9곳 중 3곳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무투표 당선되었다.
중대선거구제하면 광역·기초의원 무투표 당선 사라질 것
단체장이야 한 명만 뽑으니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광역의회의원을 선거구당 1명을 선출해야만 할 이유는 없다. 지방의회는 지자체를 이끌고 단체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조직이지 동네 대표의 모임이 아니다. 구미와 포항 지역의 경우 광역의원 선거구를 국회의원 선거구와 동일하게 잡으면 한 선거구에서 4~5명을 선출하게 된다. 이런 중대선거구제였다면 1개 정당이 후보 1명을 내서 무투표 당선되는 현상은 영남이나 호남에서도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기초의원 지역구 선거에서의 무투표 당선도 같은 방향의 해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기초의원 선거구 무투표 당선은 대부분 ‘2인선거구’에서 일어난다. 영남이나 호남의 경우 지역 제1당은 2명 다 당선시키려고 후보를 내고, 거기에 타정당이나 무소속 후보가 1명이라도 추가되면 무투표는 면한다. 반면 수도권 2인선거구에서는 거대양당이 한 명씩만 후보를 내고, 빈틈이 없어 좌절한 소수정당이나 무소속 출마의향자들이 모두 포기함으로써 무투표 당선으로 끝나는 것이다. 선거구 선출 인원을 늘리면 해결되는 일이다.
기초의회의원 비례대표마저 무투표로 끝나는 지역은 대다수가 영남과 호남이다. 특히 인구가 적은 농어촌이 심하다. 한국 지방의회는 전체 의원의 1/10 이상만 비례대표를 두면 그만이다. 10석 이하 의회에서는 1석만 비례대표다. 1석은 제1당이 가져가는 것이다. 지지율과 의석율을 맞춰주기 위한 비례대표제가 졸지에 거대정당의 ‘보너스 의석’이 되는 것이다. 이러면 제2당 이하부터는 비례대표 후보를 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경주시의회의 경우 비례대표가 3석이지만, 제1당이 2명, 제2당이 1명만 후보를 냄으로써 무투표가 되었다. 비례대표 의석은 지지율에 비해 의석수가 낮은 정당에게 우선 배정해야 한다. 지역구에서 아깝게 떨어진 후보에게 비례대표로 당선될 기회를 주는 석패율제도 바람직하다.
기초단체장 무투표 당선 방지하려면 지역정당 고려해볼만
기초단체장선거 무투표선거를 최대한 방지하는 방법도 없지 않다. 영남과 호남의 경우 제2당 후보는 무소속 후보보다 잠재력이 더 낮은 지역이 많다. 이런 지역은 차라리 지역내의 정치 지형을 통해 제1당에게 대항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지역에서만 존재하는 지역정당(Local Party)을 허용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선진국 절대 다수는 지역정당을 굳이 금지하는 제도가 없다. 정당 설립 요건이 까다롭지 않거나, 심지어 정당법이 없는 나라도 있다.
무투표 당선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해법은 모두 분명하다. 하지만 왜 선거제도 개혁으로 나아가지 못할까. 첫째는 당연히 거대양당의 독점욕이다. 둘째는 시민들이 가진 ‘선거제도 포퓰리즘’이다. 다수 시민은 다당제를 선호하지만 여전히 강력하게 양당제를 추구하는 시민들이 있다. 정당수가 많아지는 걸 ‘난립’이라고 여기는 사고는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한 선거구에서 한 명만 뽑는 제도가 단순하므로 그것이 좋은 제도’라는 의식도 두텁게 남아 있다. 심지어 다당제를 선호하는 시민 일부도 그렇게 생각한다. 선진국 절대 다수가 한 선거구에서 여러 의원을 뽑는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언론에게 묻는다. 이 세태를 주도하거나 방치한 것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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