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동 기자
[분석과 해설]
박지원 "디테일하게 얘기 못하지만 윤 대통령 x파일도"
박지원, 돌출 발언 아닌 계산된 발언 가능성 높아
1. ‘국정원 60년 사찰 X파일’ '윤 대통령 X파일도' 발언 파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 60년치 사찰 X파일 보관’ 발언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특히 박 전 원장이 ‘윤석열 대통령 x파일’까지 언급하자, 윤석열 대통령실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고 국민의힘은 “자중자애하라”고 공식 논평까지 내는 등 일파만파다.
당장은 전직 국정원장의 ‘비밀 또는 직무사항 누설’ 논란이지만, 향후 국정원 60년치 사찰자료 확보 과정과 보관의 불법성 문제가 더 큰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2일 “전직 국정원장의 입이 이토록 가벼울 수 있느냐”면서 “무슨 관심을 끌고 싶어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고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이 관계자는 “업무상 알게 된 정보를 밖에 이야기하면 어떤 조치를 당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저러는 의도가 의아하다”면서 “(윤 대통령 X파일을) 공개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라. (법 위반으로) 교도소에서 보면 되는 문제”라고 반발했다.
김형동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철저히 보안이 지켜져야 할 국정원의 활동에 대해 전직 국정원 수장으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도 문제이지만, 윤 대통령의 x파일도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내세우려는 태도까지 보였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혼란스러운 민주당의 모습에 원로 정치인으로서 훈수 두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까지 하고자 국정원 활동을 운운하는 박 전 원장의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며 “박 전 원장은 자중자애하시길 권고한다”고 말했다.
박 전 원장은 10일 CBS라디오에서 “국정원이 60년 간의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등에 대한 ‘X-파일’을 보관하고 있다”고 공개 언급했다. 박 전 원장은 이어 다음날인 11일엔 JTBC와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 등 현 정부 정치인의 X파일 보관 여부를 묻자 “국정원법(비밀누설)을 위반하면 감옥을 간다”면서도 “디테일하게는 얘기 못하지만 근본적으로 있다”고 부인하지 않았다.
2. 국정원의 이례적 경고
박 전 원장이 CBS라디오에 출연해 ‘국정원 60년간 사찰 X파일 보관’ 발언을 한 다음날인 11일 국정원은 박 전 원장에게 공개 경고를 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국정원은 “최근 박지원 전 원장이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재직 중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공개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면서 “사실 여부를 떠나 원장 재직시 알게된 직무사항을 공표하는 것은 전직 원장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이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이어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국정원직원법 제17조에 따라 비밀을 엄수해야 하고, 직무 관련 사항 공표시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서 “박 전 원장은 언론 인터뷰 등 공개활동 과정에서 국정원 관련 사항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또 “전직 원장 중에 퇴임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국정원 업무 내용을 언급한 전례도 없다”며 “특히 전직 원장의 국정원 업무 관련 발언은 국정원과 국정원 직원들을 불필요한 정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직 원장이 퇴임한지 한달 도 안돼 방송사를 돌아가며 공개 인터뷰를 하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국정원이 바로 직전 퇴임 원장을 향해 이처럼 강도 높은 공개 경고를 하는 것도 전례 없는 일이다.
국정원이 보도자료를 낸 뒤 박 전 원장은 페이스북에 “국정원 보도자료를 보았다”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저의 발언이 제가 몸담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정원과 사랑하는 국정원 직원들에게 부담이 된다면 앞으로는 공개 발언 시 더욱 유의하도록 하겠다”고 곧바로 물러섰다.
3. 확인된 사실- 국정원, 박근혜 정부까지 사찰과 사찰 자료 보관
국정원 보도자료는 박 전 원장의 인터뷰 발언 내용을 부인하지 않고, ‘재직 중 직무와 관련된 사항 공개’라고 언급했다. 또 박 전 원장의 발언이 국정원직원법 17조에 어긋난다고 경고함으로써, 박 전 원장의 발언이 국정원의 비밀사항 또는 직무사항에 해당된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확인해줬다.
박 전 원장의 발언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 때부터 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원까지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 등 사회 유력인사들을 죄다 사찰해 국정원이 존안자료 또는 X파일로 메인서버에 보관하고 있다. 장장 60년 동안 이뤄진 사찰 자료들이 고스란히 국정원 서버에 보관돼 있다는 것이다.
또 박 전 원장은 공소시효(국정원법 정치관여죄)가 7년인데, 박근혜 정부 후반부에 대해선 공소시효도 남아있다고 했다.
박 전 원장의 발언과 국정원의 대응과정에서 그동안 설(設)로만 또는 비공식적으로 전해진 중앙정보부 안기부 국정원의 60년치 사찰자료의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박 전 원장이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다’라고 한 점으로 보면 상상 이상의 광범위한 인사들의 사찰 자료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4. 돌출 발언 아닌 계산된 발언 가능성 높아
박 전 원장은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국정원장으로서 아쉬웠던 일’을 묻자 “특별법을 제정해 폐기했어야 했는데 못했다”면서 ‘사찰 자료 보관’을 언급했다.
박 전 원장은 ‘정치 9단’으로 불릴 정도로 정치적 계산이 빠르고 정치적 파장을 가늠하는데도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점에서 박 전 원장의 발언은 “특별법 제정을 못했다”는 것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 의도한 얘기는 ‘국정원의 사찰 자료 보관’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박 전 원장이 인터뷰에서 국정원법 정치관여죄의 공소시효까지 언급한 점을 보면, 박 전 원장이 국정원직원법 17조(전현직 직원 비밀 및 직무사항 누설 금지)를 몰랐을 리 없다.
박 전 원장은 국정원의 이례적 경고가 나온 뒤 페이스북에서 “저의 발언은 국정원의 과거 국내 정보 수집 활동 당시의 관련 문서가 정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박 전 원장의 언급으로 보면, 과거 사찰 문서가 윤석열 정부에서 활용되거나 또는 정쟁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은근슬쩍 미리 터뜨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x파일 언급과 관련, 국민의힘 측에선 박 전 원장의 ‘존재감 부각’으로 비판했지만 이 보다는 윤 대통령에 대한 경고메시지로 보이는 측면도 있다.
박 전 원장은 전날 JTBC와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취임하고 11일 날 쫓아내 버리더라구요. 그니까 섭섭하기도 하죠”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국정원장 후임자가 결정되기도 전에 취임하자마자 박 전 원장을 내보내야 할 뭔가가 있었던 것이고, 박 전 원장은 이에 대한 방어차원에서 ‘날 건드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급히 날릴 필요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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