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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택의 미술 딜라이트 / 심정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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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가 몸통을 흔들다’, 섬유예술가 조성연

 

현대미술 작가로 평가받는 디자이너의 작품은 조성연의 바느질을 만나야 완성된다. 디자이너가 10분의 1 모형인 그림을 그리고 소재인 원단의 고유 넘버를 정해주면, 원단을 구입하고 실제 크기로 바느질하는건 조성연의 몫이다. 

새옹지마 155×195㎝ 캐시미어 2017년 이슬기 협업, 에르메스 / 사진제공=조성연

조성연의 바느질이 예술이 된 첫째는, 천 조각과 조각을 이어붙일 때 양쪽 조각 뒤에 천을 덧대지 않고 바로 병렬시켜 잇는다. 두 번째는 쟁기질하듯 천의 골과 골 사이가 일정하여 바느질이 지나간 자리의 오목과 천이 차지하는 그리드(격자) 볼록은 평면상 형태미를 나타내면서도 두께를 가지며 만질 수 있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그는 젊은 시절부터 숙녀복 의상실에서 일했다. 숙녀복은 원피스, 투피스, 쓰리피스, 코트, 두껍고, 얇은 재질의 원단 등 그 수가 다양하다. 그는 다른 이의 바느질을 곁눈으로만 봐도 금방 따라 할 수 있었다. 

기성복이 대중화되기 전인 1960년대~ 1970년대에 본격 보급된 손재봉틀과 발재봉틀은 소도시까지 맞춤복 의상실이 사업체로 경쟁력을 갖추게 했다. 

조성연은 서울로 직장을 옮겨 패션회사 기획실에서 디자이너와 협업으로 샘플 작업을 담당했다. 자신이 만든 샘플이 최소 수백 벌씩 제품이 되어 대량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광경은 신기했다. 명절 마다 들른 고향 통영에는 수년간 누비가 성황이었다. 당시에도 지금도 누비 장인은 제품의 색과 형태를 결정하는 디자이너를 겸하고 있다.  

통영은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1604년(선조 37) 이후 통제영 안에 군사용 군수품(軍需品)과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進上品)을 제작하는 공방이 밀집하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와서 공예도시 전통을 가진 통영에 누비가 들어와 본격화되었다. 

누비옷은 승려들이 해진 옷을 수십년간 기워 입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검약의 상징이다. 누비천은 여인들의 아기 둘러업는 처네나 포대기로 또는 이부자리 등 각종 생활 옷감으로 쓰였다.

이러한 통영 누비의 전통은 1980년대 특수하게 만든 노루발(재봉틀 톱니 위에서 바느질감을 누르는 부위)이 나오면서 변화가 왔다. 먼저 박은 자국을 노루발이 타고 다른 골을 또 박을 수 있게 제작되어 기존의 노루발보다 2~3배 촘촘히 박을 수 있어 공급량을 확대할 수 있어 시장을 키웠다.

재봉틀은 대량 봉제를 가능케 하여 의류 문화를 변혁했다. 디지털 시대를 앞당긴 스마트폰을 한 손으로 자유롭게 사용하는 젊은이들과 달리, 진화된 재봉틀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이는 소수이다. 통영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의 인근 도시 진주는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 즉, ‘진주명주’로 알려진 실크 생산지이기도 하다. 
 

백팩(파도 23×30×10㎝ 폴리에스테르), 장지갑(9×18.5×0.5㎝ 실크) 각 2021년 /사진제공= 조성연

누비는 부드러운 원단도 내구성을 요하는 단단한 지갑이 되기도 한다. 누비는 시간이 지나면 해어지는 원단 조직을 고정시켜 재료가 원래 가지지 않았던 내구성을 만들어낸다. 섬유 원단으로 만든 지갑, 여성용 핸드백, 백팩 등은 가죽 보다 훨씬 가볍다. 
축 늘어지는 원색의 실크 원단을 누벼 만든 여성용 핸드백이 언뜻 스쳐지나며 본 도심속 가죽 핸드백을 본뜬 견고하기만 한 대형 조형물을 연상시킨다. 혹은 대형 옥외간판에 모델이 든 명품 핸드백 광고를 연상시키는건 무엇 때문일까.

바람개비 155×195㎝ 폴리에스테르 2018년 / 사진 제공 = 조성연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이념(Idée)'은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 세계에서 말하는 '욕구'들을 말한다. 들뢰즈는 나중에 이념이라는 말 대신에 '욕망'이라는 말을 쓴다. '이념(Idée)'의 구성요소는 '강도'와 '미분'이다. 강도는 고도차, 위도차, 압력차처럼 힘으로 가득하며, 이를 설명해주는 역동적인 수학체계로서 미분은 '창조적 행위'도 포함된다.

‘미분’은 또한 '차이를 담고 있는 요소'란 의미가 있다. 차이는 오로지 ‘감각될 수밖에 없는 것(ce qui peut être que senti)’이다. 이러한 강도의 차이는 오랜 반복의 결과로서 만들어진다. 

이념을 만드는 이는 작가이다. 작가에게 주어진 반복의 결과로 습득된 예술적 재능이 구현된 게 예술 작품이다. 유한적 존재인 인간인 작가가 만들어내는 작품 또한 유한하다.

조성연 작품의 핵심 가치는 ‘견고함’이다. 그 견고함은 당초 보편적 실용성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차이가 있는 실용성을 담으며 회화의 구성 요소인 구조, 형상, 윤곽을 비주얼로 나타내기에 ‘컬렉션’이라는 인간의 또 다른 욕망과 마주치면서 미학적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견고함은 ‘모든 것은 소멸한다’는 진리, 신의 섭리에 대항한다.   

평면의 드로잉만으로는 공간을 볼 수 없다. 그는 평면 작업(재봉틀 바느질)을 통해 실용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건축적 요소도 가지고 있다. 극단적 미학만을 추구한다면 조각의 영역까지도 파고들어갈 수 있다.    

골을(이) 만드는(생기는) 게 누비의 특징이다. 누비는 촘촘하게 할수록 더 탄탄하게 만들어진다. 너무 잘면 골이 나오지 않기에 적당한 너비를 찾아야 하는 것도 작가의 몫이다. 

장인으로 불렸던 조성연이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된 계기는 현대 미술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 및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이슬기를 만난건 인연이다. 

고양이세수하듯 155×195㎝ 명주 2020년 이슬기 협업 부산비엔날레 / 사진 제공 =조성연   

조성연은 이슬기와 협업으로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이불 프로젝트 U’를 선보였다. 이슬기는 디자인과 스토리를, 조성연은 작업을 담당했다. 이후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2017년 이탈리아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고가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로, 같은 해 독일 ‘뮌헨 창의비즈니스 주간’에, 2020년 부산비엔날레 등에 이슬기와 협업해 작품을 발표해 왔다. 

설치작가이기도 한 이슬기는, 한국뿐 아니라 남아메리카의 이불 문양도 상징적 의미를 지녀 이불이 인류학적 오브제의 가능성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이불을 철학자 미셸 푸코는 ‘헤테로토피아’ 영역에 넣기도 한다. 

“부모의 커다란 침대에서 아이들은 대양을 발견한다. 거기서는 침대보 사이로 헤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커다란 침대는 하늘이기도 하다. 스프링 위에서 뛰어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이불에서 엄마 아빠 냄새가 나” 자라나는 아이들이 가끔 하는 말이다. 후각으로 느낀 기억은 세대를 막론하고 강렬하다.

이불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미술의 전통적인 한 영역인 ‘설치’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회화는 통상 벽면에 걸리나 평면화된 이불 규격(195×155㎝)의 작품들은 바닥에 누이기도 한다.

소라 27×22×11㎝ 폴리에스테르 2021년 / 사진 제공 = 조성연

조성연은 2014년부터 경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1년 과정의 통영누비·아트 과목을 4년간 가르쳤고 100여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안타깝게도 인내심을 가지고 시간과 돈을 투자할 정도로 산업으로 형성되지 않다보니 제대로 된 작가군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가 직접 제작한 작품은 통영 12공방과 통영 전통공예관에서만 판매한다.

조성연은,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젠가 뚫고 나온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주식 시장에서 꼬리인 선물이 몸통인 현물 주식 시장을 좌우하는, ‘꼬리가 몸통흔들기’(wag the dog) 현상도 가능할 듯 보인다. 아직은 재료와 제조 공정만이 특화된 ‘공예’로 볼 수 있으나 형태와 색 중심의 현대 디자인, 작가의 메시지 등이 만나 양모로 짠 태피스트리(tapestry)처럼 현대 미술 장르로 발전할 수도 있다. 

거북선 10×19×1㎝ 폴리에스테르 2020년 / 사진제공 = 조성연

조성연의 누비 섬유는 두께가 있고 만질 수 있으니 조각으로 볼 수도, 조각과 회화의 중간 단계 장르로도 볼 수 있다. 디자이너와의 협업 작품들은 그 마티에르가 2차원 평면 회화에서 물감과 물감이 덮여서 드러나는 것과는 다르다. 단면을 잘라서 보면 ‘평평함(level)+평평함(level)’을 특징으로 한다. 

캔버스에 구현하고자하는 섬유예술은 섬유 자체가 오브제로 쓰이거나 두께가 없고 형태와 색으로만 표현되기에 조성연이 시도하고 있는 장르와 매체, 생산 방식에서의 혁신 정도에 따라 섬유예술가의 포지셔닝을 뛰어넘을 수도 있겠다.

작가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몸으로 체화된 기술 수준으로 머무르게 해서는 안된다. 현대미술은 응용 미술과 순수 미술, 장르간, 이론적으로는 학제간 경계 조차도 허물어지지 않았나.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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