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재명 덮친 세대별 '표심의 역습'
20대 대선 청년 담론, 수도권 중산층 시선의 '젠더'이슈에 국한
양쪽 모두에게 뼈 아픈 결과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2연속 집권의 법칙’을 깨트리고, ‘박근혜 파면’까지 겪었던 국민의힘에게 5년만에 정권을 도로 내줬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당선자는 ‘정권교체 지지 50% 이상, 정권연장 지지 40% 이하’의 여론지형에서도 바짝 추격을 당했다.
이들의 뼈 아픈 구석은 이번 선거에서 지역 표심 이상으로 관심을 모은 세대별/성별 표심에서 드러난다. 유권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투표했는지는 구역별 표심만 집계되지만, 최종 선거 결과에 거의 동일하게 들어맞은 KBS·MBC·SBS 방송 3사의 출구조사를 통해 세대별/성별 표심을 알 수 있다.
민주당 지지 2030여론 이탈 왜?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20대 남성뿐 아니라 30대 남성에서도 패배했다. 2010년대 내내 민주당 지지세대였던 30대 상당수가 이탈했다. 민주당 주요 지지층인 40대의 투표율은 70.4%로, 60세 이상(84.4%), 50대(81.9%)에 비해 크게 낮았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는 20대 여성뿐만 아니라 30대 여성에게도 패배했다. 2030 지지로 40대를 포위한다는 ‘세대 포위론’은 무위로 돌아갔다. ‘중도 세대’인 50대에서도 43.9% 대 52.4%로 크게 뒤졌다.
20대 여론의 이탈 징후는 이미 문재인 정부 초기 ‘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문제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를 단기적인 반발로 치부하거나 ‘20대 보수화’를 운운하는 오만함을 나타냈다. 2019년 조국사태에서 본격적인 반발이 있었지만 이듬해 총선에서 20대 지지를 얻어 대승한 것이 민주당에게 독이 되었다. 그리고 이탈 분위기는 30대로 번져나갔다. 20대였던 유권자가 몇 해 지나 30대로 편입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한 사람의 정치 성향 결정에 관해, 30대는 20대 이상으로 중요한 시기이다.
10년 전, 당시의 30대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자주 들렸다. “20대 때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이제는 하나 둘씩 생활의 불만, 사회 부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진보적인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을 떨어트리는 투표를 한다.” 현재의 30대는 다음과 같은 유권자들이 흔하다. “내가 20대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불만을 갖고 민주당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반-민주당 유권자가 되었다.”
30대는 직장과 집을 구하고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생계와 생활에 여러 부담과 불편함에 직면한다. 비혼 및 1인가구 생활자의 경우도 거주, 건강 문제, 성과 젠더에 관한 문제, 직장내 부조리나 소비자의 갑질에 시달린다. 역대 어느 정권이든 이 문제들을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했고, 민주당도 2010년대 한나라당, 새누리당에 이어 화살을 맞게 된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위선’과 ‘내로남불’ 이미지까지 쓰고 있다.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자신한 것에 비해 너무 초라하거나 정반대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40대 투표율이 낮았던 것도 30대의 불만 여론을 40대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이재명 후보’의 약점도 한몫했다. 김대중-노무현-정동영-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계열 후보들은 ‘최소한 도덕적 우위는 있다’는 인식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주었다. 반면 이 후보는 ‘도덕적 우위를 자신할 수 없는 민주당 사상 최초의 후보’였다. 이 후보가 이낙연 전 대표 등의 경쟁자들보다 혁신적이고 유능하다는 이미지를 빚어 경선을 통과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치의 근간이 도덕성이라는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보수정당 지지경험 50대 윤석열 외면 왜?
한편 윤석열 당선자는 50대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졌다는 것이 뼈아픈 대목이다. 50대는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다가 맨먼저 이탈한 세대로, 조국 전 장관 임명에 대한 단호한 반대를 보여주었다. 50대는 586세대와 동일시할 수 없다. 서울이나 지방 대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며 학생운동을 지지했던 사람들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산업 전선으로 나아갔던 사람들은 상이한 경험을 지닌다. ‘586이 아닌 50대’는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 대한 지지 경험을 갖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거치고 나서 민주당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했지만, 민주당을 심판하면서 국민의힘을 택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50대 다수가 윤 당선자를 외면한 것은 무엇일까. 그가 과거 새누리당을 방불케 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좌파혁명세력”, “민주당 전위대인 언론노조를 뜯어고쳐야 한다” 따위의 유세 연설은 민주당에 넌더리를 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환영받기 어려운 극언이다. 이재명 후보는 적어도 선거 후반에는 실용적이고 포용적인 발언을 했지만, 윤 당선자는 지지하지 않는 사람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갈등을 유발하며 ‘국민의힘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으로 비쳐졌다.
다음은 20대를 보자. 윤 당선자는 20대 남성에서 58.7% 대 36.3%로 앞서나갔지만, 20대 여성에서 33.8% 대 58.0%로 이 후보에게 뒤졌다. 20대 전체에서는 이재명 47.8% 대 윤석열 45.5%. 20대 남성에게 몰입한 대가로 그만큼의 20대 여성을 이재명 후보에게 밀어준 셈이다. 거기 그치지 않고 30대 여성에서도 이재명 49.7%-윤석열 43.8%로 이 후보가 승리했다. 이준석류 안티 페미니즘을 끼고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공약을 캠페인 핵심으로 삼고 ‘성인지 예산’에 대한 가짜뉴스를 유포하고도 사과하지 않은 반대 급부다.
막판 ‘이재명으로의 결집’ 현상의 원인이 젠더 문제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20대 남성 58.7%의 지지율도 성공적인 결과는 아니다. 2021년 서울시장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는 20대 남성 예상 지지율에서 75%나 차지했었다. 첫째, 윤 당선자의 식견 부족 이미지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던 청년 유권자들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거나 기권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둘째, 20대 남성이라고 해서 젠더 문제에서 단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 페미니즘에 불만을 가진 남성 중에도 안티-페미니즘이 갈등을 부추기는 시도에 질려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고 김용균 씨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김군’ 같은 청년 남성 유권자가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를 지지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도 낮추고 노동시간에 건 빗장도 풀겠다던 윤석열 당선자는 노동자 안전에 대해서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은 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 정권기간에 노동권이 그리 신장된 것도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거대 양당의 청년 담론은 철저하게 ‘젠더’ 이슈로 국한되었다. 그것도 수도권 중산층의 시선에 함몰되어서 말이다. 소거되다시피 했던 ‘블루칼라’, ‘저소득층’, ‘비수도권’ 청년들이 정치적인 주체로 부상하는 것, 이것이 제20대 대선 이후 한국 정치의 주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