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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유와 존재에서 자유로운 사랑(♥)’ 을 전하는 작가 강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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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배우에서 근본의 자리로 돌아온 작가 강리나 초대전

초대전 '그라피토'- 4월 30일까지 경기 용인시 수지구 갤러리위

경기도 용인 수지구 갤러리위에서의 초대전 타이틀 ‘그라피토’(Graffito)는 강리나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생각, 지난 작업의 궤적과 향후의 방향성을 동시에 함축한다. 

Marilyn 1. 91×181㎝, Acrylic on canvas, 2022 / 사진 제공 = 갤러리 위

이번 전시에 내놓은 마릴린 먼로 두 작품은 세로가 각각 91cm로 원작 정사각형 사이즈 91x91cm를 따라하면서도 횡으로 각각 숫자 공식의 낙서와 화폐 단위 달러를 같은 사이즈로 병행한 좌우 이분(二分) 구도를 사용하였다.

‘낙서’(graffito)는 작가의 1998년 첫 개인전부터 등장한다. 현대 물리학의 주요 방정식 몇 가지를 그림에 차용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E=mc² 에도 주목했다.

2000년대부터는 회화 뿐 아니라 입체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발표한다. 2003년의 경기도 양평 전시는 반전(反戰) 메시지를 담았다고 평가받았다. 전시장에는 알루미늄 소재의 높이 1m30cm 가량의 은빛 미사일 20여기를 늘어 세웠다. 미사일 원기둥 외피에 알파벳 숫자와 단어들을 낙서처럼 새겨넣었다.

20세기의 발명품 미사일은 파멸을, 아스피린 알약 조형물은 구원을 의미했다. 전시장의 대조적인 상징들은 전쟁의 광기와 비극을 고발하려는 작가의 메시지를 담았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 )의 설치 작품인 ‘약장’(藥欌)은 1999년 뉴욕에서 32만 달러에 거래됐다. “Holidays”, “Pretty Vacant”라고 이름 붙여진 벽면 설치 약장 작품은 1989년 처음 등장한다.

현대 미술의 본 고장에서 교육받고 활동한 또래인 허스트는 약을 ‘삶과 죽음’의 소재로만 다루었으나 강리나는 미사일과 대비시켜 기독교적 기원의 상징으로 등장시켰다.

상대성이론에 대한 흥미가 미사일로 연결됐고 드로잉 작업을 하다가 조각으로 발전했다. 강리나는 남들이 보지 않는 부분을 보고 생각한다. 어느 해 봄 날, 한강을 건너는데 강변 고수부지에 미사일이 보였다. 시멘트 전신주는 지중화 작업을 위해 철거된 채였다. 착시 현상으로 미사일로 보여진 전신주가 아름다웠다.

미사일, 스테인레스 스틸, 2003년 / 사진 제공 = 강리나 작가

2003년 3월, 미국 연합군은 이라크를 공격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1년 9. 11사건 이후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다. 강리나는 북한이 왜 악의축인지를 고민했다.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어린 시절 오빠가 가지고 논 장난감 중에는 트럭에 실린 미사일도 있었다. 기억과 체험이 작업의 모티프가 되었다. 시간과 공간이 상호 교차하면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작가의 자각은 화엄경에 나오는 ‘인다라망(因陀羅網)’을 상기시킨다.

강리나의 인다라망은 3차원 곡선으로 구성된 ‘한옥의 지붕’과도 같은 작가의 기억과 체험, 교육 등 의식을 기둥과 기둥 사이를 단위로 하는 칸(間)으로 이루어지는 ‘무의식’이 받치고 있는 양상이다. 

강리나의 글과 숫자, 공식으로 이루어진 낙서는 도리와 대들보를 포함한 한옥 건축의 외피에 시공되는 단청(丹靑)과도 같다. 대상에 부여된 글이나 숫자의 의미를 탈각하기 위한 현대 미술의 맥락과는 결을 달리한다. 

3×33=33, 스테인레스스틸, 메탈조명 400w 2003/ 사진 제공 = 강리나 작가

같은 해 서울에서 ‘3×3=33’ 전시를 가졌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앉은 키 정도의 구슬 33개로 100평 규모의 전시장을 채웠다. 숫자 33은 불교에서 천상 세계를 상징한다. 작가는 3×3은 현실이자 아날로그의 세계를, 33은 유토피아이자 본격 도래하는 디지털의 세계로 해석하였다. 

원형 구(球) 형태의 구조물들 표면에는 수학 공식 모양의 낙서들이 새겨졌다. 구 안쪽에 조명을 설치하여 패인 글씨 사이로 빛이 투과해 형형색색 비추어지며, 전시장 사방 벽에 부착된 대형 거울을 매개로 33개의 구(球)와 관객의 이미지, 실루엣이 반사되어 증식되며 뻗어나가도록 설치했다.

2007년, 백제 석공 아사달의 장인정신과 꿈, 고조선 도읍지 아사달의 기원을 좇는 ‘아사달의 정원’전시를 가졌다. 자개와 옻칠을 사용한 몽환적 풍경의 평면 작품들이었다. 인간이 동물, 식물, 무생물과 동등하고 공존하는 조화로운 세상을 표현하였다. 

사랑(♥)

갤러리위 실내 전시장에는 팝아트의 황제 앤디워홀이 즐겨 그린 당대의 섹스 심벌이자 영화배우인 마를린 먼로, 켐벨 스프 통조림 등의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강리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바꾼 앤디워홀과 시대를 앞서간 영화 배우 마를린 먼로를 오마주한 것이다.

작가들은 통상 자신이 창작한 유형 또는 이미지를 시그니처로 삼기 위해 반복적, 지속적으로 그린다. 다른 작가의 시그니처를 가져올 때는 새롭게 창조된 시각적 코드를 숨기기 마련이다. 

강리나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하트가 들어가 있다. 마릴린 먼로 작품에는 모델의 귀에, 캠벨 스프 깡통은 상표 가운데에 하트가 위치한다.

Healing Blue heart, 116×80㎝, Acrylic on canvas, 2020/ 사진 제공 = 갤러리 위

천국의 계단으로 오르는 듯한 공간 블루하트(♥) 중심으로 잉어 두 마리가 부유하고 있다. 동양적 미학과 초현실주의적 배치 기법이 버무러져 있다. 강리나에게 시그니처는 하트이다. 

하트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에로스(큐피드)와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아들 에로스는 활과 화살을 들고 등에 날개가 달린 아기 천사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대중매체에는, 아기 천사가 하트 모양 화살을 쏴서 사랑을 일으키는 이미지가 등장한다.

아름다운 공주 프시케는 에로스의 어머니 비너스의 질투심으로 죽음의 잠에 빠졌으나 에로스의 키스로 다시 살아나 사랑을 이루게 된다.

강리나는 언론 기고 칼럼 등에서, 소유와 존재에서 자유로운 인간을 설파한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으로 소유되기보다 믿음으로 영원히 간직되어야 한다. 내 몸도 내 것이 아니고 자연으로 환원될 껍데기일 뿐, 옆에 있다고 내 것이 아니고 멀리 떨어져 있다고 내 것이 아닐 것도 없다. 사랑은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자를 팝아트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로버트 인디아나(Robert Indiana. 1928~2018)가 ‘러브(Love)’를 처음 제작한 1966년은 도시 곳곳에 광고, 표지, 상표가 범람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는 상업적 디자인 문자체 ‘LOVE’를 빨강으로, 배경은 파랑과 초록으로 처리하고 ‘O’를 기울어지게 했다. 빨강, 초록, 파란색은 강렬한 대조를 만들어낸다.  그 후 이 작품은 수십년 동안 세계 여러 도시에서 대형 조형물로 설치됐다. ‘러브(Love)’의 직접적 단일 형태와 디자인은 단연 붉은색의 심장 모양인 하트(♥)이다.

Together, 91×91㎝, Acrylic on canvas, 2020 / 사진 제공 = 갤러리 위

작품 ‘투게더’(Together)는 위 아래로 갈라진 하트 사이로 고등어가 부유하고 있고, 고양이 두 마리가 하트의 골, 상단에 올라가 있으며 주변으로는 주사위, 포장 캔디 등이 부유하고 있다. 그림 속 고양이는 고등어를 가질 수 없다. ‘사랑은 영원히 믿음으로 간직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앤디워홀의 집에는 헤스터와 샘(SAM)이란 고양이가 번성하여 자손들이 수십 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고양이들을 모두 샘이라고 불렀으며 샘 연작을 일러스트로 여럿 남기기도 했다. 

앤디워홀은 순수 미술과 디자인, 패션을 넘나들었다. 단순하면서도 해학적이며, 반복적이지만 비슷한 듯 다른 워홀 고유의 이미지 조차 강리나는 철저하게 오마주하고 있다. 워홀이 자신의 초상도 작품으로 만들었듯 강리나도 리즈 시절 이미지 초상과 현재 자신이 그대로 드러난 초상을 작품으로 만들 것으로 보인다.  

강리나는 캠벨시리즈 마감에 크리스탈 레진을 사용하고 있다. 캔버스 천 대신 5겹 장지를 사용하는 등의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기억에서 사라지기

사회(대중)가 가진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 고정관념 또는 선입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서울 DDP 자리에는 동대문 운동장이 있었다. 사람들은 고교 야구 대회를 보았고, 거리 포장마차에서 붕어 빵을 사먹었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진 게 집단 기억이다.

1980년대 ~ 1990년대 10여년은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비디오 영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이다. 강리나는 SNS도 없고 대중 매체도 많지 않았던 그 10여년 동안 CF 모델과 영화 배우로 활동했다.

소위 미술판에 들어오면 그 집단 기억은 제한된다. 관람객은 19세기 유럽 근대 미술 가들의 전시에는 줄을 서지만, 작품이 거래되는 미술 시장 참여자들은 제한적이고 그 대상은 협소하다.  

미술계는 대중을 의식하고 작업하는 작가가 많지 않다. 대중을 상대 하던 영화 배우였던 강리나는 미술계로 넘어와 일기를 쓰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어 차곡차곡 남기듯 작업을 한다. 예술은 궁극적으로 ‘미’를 추구하기에 현실과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꾸밀 수 있다고 믿는다.

강리나는 영화에 참여하면서도 자신은 미술가로 활동한다고 인식하였다. 영화에서 미술의 영역은 존재한다. 세트 디자인, 제작, 소품 구입 등 영화가 요구하는 리얼리티의 구현과 관련되어 있다. 미술가는 없지만 미술 담당은 있다.

영화는 제작, 상영되고 평가받는 과정이 상업적이다. 배우는 관객들이 가진 판타지에 부응하기 위해 영화를 벗어나서도 이미지를 관리해야하는 부담을 안는다. 강리나는 그러한 대중들의 시선과 기대 수준을 맞추는 게 버거웠다. 그건 마치 동일한 공간에 낮과 밤이 공존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나 보여지는 초현실적 현상과 같은 것이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집 안의 온갖 벽면, 마루 바닥에 글, 그림, 숫자들을 그리던 어린 아이가 자연스레 예술고에 진학했고, 미대생이 되었던 궤적을 가진 본래의 자리로 너무 늦지 않게 돌아갈 수 있었다.

불가에서 말하는 ‘일체 중생 모두가 근본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本地還處)는 당위성을 일찍 깨닫았기 때문이다.

강리나는 세트나 무대의 구성 과정에 부분적으로 참여 또는 관찰한 경험을 조각가 또는 조형물 작가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았다. 그녀를 ‘설치 작가’로 부르는 이유는 자신의 입체 작품들이 사회적 메시지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사진이나 영상으로 복제, 유통되어 현대 미술의 장르 또는 방법인 ‘설치’(installation)로도 분류되기 때문이다.

우주를 향한 통로, 스테인레스스틸 등 2001 / 사진제공 = 강리나 작가

영화계를 떠난지 3년이 지난 1999년 겨울 대구, 주택공사가 주관하는 아파트 환경 조형물 공모 1차 심의를 통과했다. 작품의 모티프는 첨성대였고, 높이는 3.5m로 실물 첨성대를 종으로 반을 자른 규격으로 유물이 갖는 신비를 재해석하였다. 두 번의 개인전을 마친 시점이었다. 

이후 2차 3차 심의는 불합격했다. 문화재인 첨성대를 반으로 자른 행위가 훼손이라는 판단이었고,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배우였다는 선입견이 작용했다. "돈도 잘 버는데 배우나 하시죠!" 직설적인 비아냥거림이 쏟아졌다. "농부가 그 해에 흉년이 졌다고 해서 농사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라고 대응했다.

2년 뒤 심의에 조건부 승인이 되어 '우주를 향한 통로'(2001)를 세울 수 있었다. 이후 경기도 과천, 충남 안면도,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에 강리나 작품이 놓였다. 

시대에 앞선 자의 고독

강리나는 한국 팝아트의 문화 주류를 빨리 보았다. 작가는 이미 20여년전 동시대 글로벌 미술의 흐름을 읽었고 강한 사회적 메시지를 발산했으나 사람들은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 집단이 가진 군중 심리에 고정 관념과 선입견이 더해져 작가와 작품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작가는 2009년 어머니의 치매가 발병하면서 이를 간호하느라 제대로 활동할 수 없었다. 최근에서야 전문 요양병원에 입원시켜 드렸다. 어머니는 한자 성명 총 24~25획수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의미가 있다해서 ‘리나’(姜 利 奈) 이름을 유명한 작명소에서 고르셨다.

“빵이 없으면 브리오시(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고정관념과 선입견은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도 여지없이 작용한다. 삶은 예술이고, 예술은 곧 삶이다. 

강리나 작가는 디지털 시대, 예술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이론적 맥락이 꺾이는 흐름을 보고 있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작가 활동도 함께 하고자 한다.

“공기의 입자 사이 사이로 움직이며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한 폭의 그림을 본다”(2003년. 강리나) 

작업중인 작가. 2003년 / 사진 제공 = 강리나 작가

예술적 통찰력에서 분명 앞서 있었으나 대중 스타, 유명인이라는 고정 관념과 이미지 덧씌우기로 인해, 창작한 작품의 본질마저 왜곡되기도 했다. 

강리나 작가 작품 세계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작가 스스로에게도 작업의 전환점이 될 용인 수지구 갤러리위에서의 전시는 4월 30일까지이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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