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정택 칼럼니스트
초대전 '아침' 서울 통인갤러리서 6월 12일까지
춤은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는 작업이다. 작가 류장복은 꽃병에 든 꽃 그림자가 아침 햇살에 흔들리는 장면을 스트브 라이히 음악과 안무가 케이르스마커의 조합으로 포착했다.
작가는 가끔 꽃을 그린다. 15년 여전 어느 봄날이었다. 가로에 백목련, 자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자신의 무게로 땅에 떨어진걸 보았다. 밟힌 꽃잎은 선연한 색을 내었다. 이후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무더기를 들여다보며 눈시울을 붉히며 붓을 들기도 한다. 우울은 꽃을 보면서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서구의 거장들과 비교해서 뭔가 부족한 느낌은 어쩔수 없다. 류장복의 정물화 <선물>, <아침> 등은 이 뭔가를 해소시킨다.
전시 주제인 <아침>은 무엇을 말하나. 새의 지저귐, 찬란한 태양을 동반한 아침은 폭풍과 어둠을 뒤로 해야 맞이할 수 있다. 인트로는 오르간이며 곧 기타로 이어지는 영국의 록 밴드 유라이어 힙(Uriah Heep)의 대표곡 '줄라이 모닝(July Morning)‘에 나오는 가사이다.
<아침>은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바뀐 시대의 아침이기도 하고, 작업의 대전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루를 마치고 얼마간의 잠을 자고 나면 다시 해가 뜨고 또 하루가 시작된다. 매일 아침이 온다.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삶의 대부분이다. 일상은 지루하다’<작가 노트 중에서>
작가가 드러내는 햇살 아래 풍경에는 사람이, 개가 지난다. 그 풍경은 매 순간 푸른 생명의 정점 아래를 사람이 길을 낸다. 요즘은 오토바이 탄 택배 청년이 지나가기도 한다.
코로나팬데믹 이후 그림 밖에 딱히 할 게 없기도 했지만 조금씩 붓끝을 캔버스 평면에 더 밀어넣을 수 있었다. 코비드의 적막감이 직업 화가라는 명분과 겸손한 게으름과 두려움을 떨쳐내고 떠밀었다. 덮쳐 오는 광막한 화면을 피할 길 없었다. 그림의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으며 머무르는 시간도 늘어났다. 기억을 눈앞에 끄집어내 감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람들> 시리즈인 <해장국집 사람들>은 ‘감각의 시간’인 2020년 겨울에 시작하여 2022년 봄에 끝마쳤다.
서울 명륜동 시장통, 화자(話者)는 여섯개 테이블이 있는 선술집 단골 손님들이다. 좁은 공간에서 타인과 거리낌 없이 주고받았던 대화가 좋았다. 흥청망청한 온기가 있었고 살가운 부대낌이 있었다.
2년여 지속된 코로나가 그들을 소환했다. 앙리 마티스의 춤Ⅱ에서 보는듯한 원형 구도는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했으나 곧 류장복 작가 페이스북에서 그 답을 찾았다.
서울 미아리 시절, 아홉 살 때의 놀이를 그린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2022> 에서도 보인다.
그의 의식은 ‘큰길에서 비탈길 첫 사거리 세탁소와 미용실, 슈퍼가 있는 자리’에 머문다. 물론 한여름 밤의 술래잡기, 다방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고무줄놀이, 딱지치기 따위 어릴 적 풍광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기억 속을 펼쳐놓은 작품 속 놀이의 장면을 멀리서 보면 한편의 군무(群舞)를 보는 듯 하다. 타인의 시야에 비친 군무가 시간을 엇갈려 옮겨와 또 다른 삶의 기념비적 장면으로 고정시킨 듯 하다.
조형 요소 중 선, 명암, 색은 시대를 거치며 회화를 주도해 왔으나 질감이 주류였던 적이 없다. 류장복은 <해장국집 사람들>에서 그림 자체의 물성적 존재감을 드러내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이번 통인갤러리 초대전 <아침>은 20여년 동안의 <철암> 작업의 종료를 의미하기도 한다. 2021년 <철암랩소디>전에 대해 문화평론가인 권영숙은 “서사의 슬픔이 깊은 곳에서 배어나는 서정적 풍경을 그렸다”고 평했다.
매화비 내리는 봄밤, 빈 집에 핀 토마토, 검은 집, 검은 세상을 덮어버린 은총같은 눈 덮인 지붕, 탄부의 손등과 주름 같은 산줄기, 사람이 가고 없는 곳에 피고 지는 잎들, 무심히 떠다니는 구름, 그 속에서도 핀 사랑들.
동시대 미술에서 서정이 사라진지는 오래되었다. 거대 문명에 대한 메마르고 장엄한 서사적 묘사는 종종 보인다.
<봄, 밤이다> <봄 밤, 돌구지>, <봄 밤, 삼방동>은 2004년 4월 삼방동과 돌구지의 봄밤, 먼 하늘에 날짐승이 나는 탄광촌의 서정적 몸짓들이 선명하다.
류장복이 2000년 10월 처음 접한 철암은, 어릴적 서울 변두리 미아리 삶의 흔적들을 가지고 있었다. 기억이 왕성할 때인 1960년대 초~중반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현존재(現存在)가 아닌 서사와 서정을 몸으로 기억하는 또 다른 나를 만났다.
류장복은 2001년 서용선, 이경희와 함께 할아텍<할 예술(art)과 기술(technology)>을 만들었다. ‘철암 그리기’라는 이름으로 매월 철암을 찾기 시작했다.
류장복은 2003년 1월 4일 저녁 6시 넘어 철암의 허름한 목조건물 2층 남동다방에 있었다. 창을 열었을 때 눈의 풍광이 차오르며 동시에 빛이 사위어가는 양철지붕 덮은 눈과 시야를 가리는 연기 토하는 T자형 연통과 골목길 밝히는 수은 가로등을 보았다. 앞산의 짙은 계곡과 육중한 산기슭을 뚫고 지나는 탄차와 낮게 내려앉은 짙은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이 때 모티프가 된 작업 <남동>은 2014년 시작되어 2021년에 종료되었다. 엄동(嚴冬) 속 길냥이도 박제되어 작품 속으로 들어갔다.
철암천 바닥에 수십 개의 까치발을 세우고 집들이 다닥 다닥 붙어 상가를 이루었다. 천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였다. 천을 따라 난 철암로 가운데쯤 역사가 있다. 국내 최초의 선탄(選炭) 시설인 철암 역두 선탄장은 1935년 조선총독부가 삼척탄광에서 캔 탄을 선별해 운반하던 시설이다.
역사 앞 녹슨 철다리를 건넌 집들이 산 밑자락에 따개비마냥 붙어있었다. 공원으로 바뀐 신설동 귀퉁이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예전같지 않았으나 화구를 펼쳤다.
곧 거대한 풍경은 두 팔을 펼쳐 오목한 공간을 만들었다. 미끄러지듯이 볼록에서 바뀐 공간에 들어섰다. 산란하는 빛의 흔들림과 미세한 생명질의 아우성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저탄장 더미 위에서 내려보는 시점이 아니었다. 으레 사생은 철암천을 훑고 오갔다. 건강한 이는 지하에 있었고 병든 자는 지상에 있었던 1960년대와 1970년대가 보였다. 군사정권이 대물림하던 시절의 광부들의 낮은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 했다.
탄광촌 철암을 들락거린 2000년대에는 짙은 향수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었다. 도시 중심의 압축 성장 일변도에 따른, 산촌 도시로 쫓겨들어 올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희생에 대해 막연한 부채감이 있었으나 막상 폐광촌에 들어서니 연탄 시대의 도시 변두리의 추억이 먼저 달려들었다.
동네는 무거운 공기 속에도 사람의 살내음이 풍겨 났다. 산비탈 판잣집 굴뚝에서, 검은 물이 흘렀다는 철암천에서, 녹슨 삼방동 철제 다리에서, 철암로를 따라 다닥다닥 붙은 빈 상가에서조차 살내음을 맡았다.
철암은 그런 시공간을 관통한 풍광으로 다가왔다. 철암은 1960년대 류장복의 유년 시절을 거침없이 소환하였다. 과거는 끊임없이 현재와 포개졌다.
목탄 한가지로 사생을 하였다. 맨 눈으로 보고, 느끼고 감각하는 것은 대상을 느끼는 태도가 형성되기에 중요하다. 육안으로만 쫓으려고 했다. 장소성과 들락거리며 기억한 것은 메시지가 된다.
사생에는 한계가 따른다. 물리적으로 작품 크기에 제한 받고, 이동의 편의성 때문에 재료 또한 단촐해야 한다.
사생 작업을 실내로 가져와 마무리 하려면 연결이 잘 안되었다. 밖에서는 풍경을 그렸으나 실내에서는 관찰, 기억, 감각이 합해진 풍광(風光)이 되었다. 시간의 두께가 그림의 두께가 되는 방법을 찾게 되었으나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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