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규 칼럼니스트
역대급 참패는 '졌잘싸'의 오만함이 빚어낸 예정된 결과
'자생당사(自生黨死)' 선택 이재명을 향한 책임론 비등
'친이재명 對 반이재명' 분란이냐 vs 쇄신이냐, 갈림길
1. 한동훈 청문회서 바닥 보인 초선 의원들
대선 패배 책임자들의 '자생당사'와 막판 내홍
예상된 결과다. 지방선거 전에 발표된 모든 지표가 국민의힘의 승리를 예견했다. 정당 지지도는 두 자리 수 이상으로 벌어졌다. 한국갤럽의 5월 3주차 여론조사에서 양당의 지지율은 43대 29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꾸준히 상승했고 부정적 평가는 하락했다. 선거 5일전 발표된 방송3사 여론조사에서 국정 안정을 위해 여당 후보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응답이 52.9%, 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응답이 39.8%로 나타났다.
막판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역전했지만 민주당 참패라는 평가는 바뀌지 않는다. 후일담이나 유승민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섰다면 국민의힘이 경기도 지사 선거도 승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 기초단체장 선거에 나선 민주당 후보들과 국민의힘 후보들의 득표 총합계를 비교해야 더 분명하겠지만 국민의힘 후보들의 득표 총합이 얼추 더 많아 보인다. 김은혜 후보의 경쟁력이 국민의힘 지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의미다. 김동연 후보는 김은혜 후보를 내세운 국민의힘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민주당의 지방선거 전략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대선 패배에도 성찰과 반성은 고사하고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는 오만함을 보였다. 인사청문회에서 벌어진 민주당 초선들의 헛발질은 민주당에 대한 실망을 키웠다. 자영업자 손실보상을 위한 추경을 정략적으로 접근했다. 대선 패배의 두 책임자인 이재명 후보와 송영길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섰다. 당쇄신을 놓고 지도부에서 내분이 일어났다. 이러고도 이길 것이라 기대하고, 선거 결과에 놀랐다고 이야기한다면 제 정신이 아니라 봐야 한다.
2. '이재명의 민주당' 놓고 격렬한 찬반 다툼 예상
이재명 전 대선후보가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출마하면서 민주당의 입장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세 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가 될 예정이었다. 첫째, 민주당이 지방선거에 승리하고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 둘째, 민주당이 지방선거에 패배하나 이재명 후보는 당선되는 경우, 셋째,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 모두 패배하는 경우다.
두 번째가 민주당으로서는 가장 나쁜 시나리오다. 첫 번째는 가능성이 없으니 논외로 하고, 차라리 세 번째 결과가 나왔다면 민주당은 대선 패배이후 미뤘던 성찰과 반성을 거쳐 다시 부활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죽어야 다시 살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가 현실이 되면서 민주당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대선과정에 내심 이재명 후보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던 의원들이 먼저 이재명 책임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정세균계로 알려진 이원욱 의원이 포문을 열었다. 김해영 전 의원,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도 거들었다. 이재명 후보를 적극 지지했던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서도 이번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이재명 후보에 실망해 돌아선 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민주당의 이재명은 받아들였지만 이재명의 민주당은 용인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유는 총선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재명의 한계가 확인된 만큼 다음 총선에서 이재명이 당의 얼굴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이재명측의 책임론 제기에 아직 이재명측의 반박은 없다. 그러나 이재명 당선자는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미 밑자락을 깔았다. 지난 5월 23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최근 민주당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우리 후보들이 전체적으로 어려운데 저라고 예외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선거 결과의 책임을 당에 돌리는 발언이다.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을 두고 이재명측과 반이재명측은 지리한 논쟁을 벌일 것이다. 이재명측은 당이 문제라 할 것이고, 반이재명측은 이재명이 문제라 할 것이다. 이재명측은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국회의원 당선자가 당 대표가 되어 당을 쇄신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반이재명측은 반발할 것이다. 반이재명측의 구심점이 뚜렷하지 않고, 어느 한 쪽이 세력에서 압도하지 못해 전당대회의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싸움이 커지면 전대 후에 당이 쪼개지는 극단적인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3. 당 내분 vs 조기 전당대회 vs 혁신비대위
윤호중·박지현 비대위가 선거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 당헌상 박홍근 원내대표가 당 대표 대행을 맡는다. 세 가지 경로가 있다. 첫째, 박 원내대표는 전당대회준비위원장 역할에 충실하고, 예정대로 8월 말 전대를 치르는 방안이다. 민주당의 입장에선 매우 위중한 시기에 거의 실질적인 지도부 공백상태를 3개월간 이어가는 것이 가능할지 또 바람직할지 의문이다. 아울러 3개월 동안 친이재명계와 반이재명계가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우려도 있다.
둘째는 전당대회를 앞당기는 방안이다. 지도부 공백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루빨리 당을 장악하고 싶은 이재명측이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양측의 대립은 마찬가지다. 또한 지방선거 패배 원인에 대한 분석과 평가, 그에 따른 처절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데 이 과정이 생략된다는 점도 문제다. 대선 패배에 대한 평가를 생략한 것이 지방선거 참패와 연결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셋째는 전당대회를 내년으로 연기하고 혁신비대위를 구성하는 방안이다. 국민의힘이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옹립했던 것과 비슷한 방안이다.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비대위원장을 세우고, 비대위를 중심으로 대선 및 지방선거를 평가하고, 당쇄신 방안을 마련한 후 전당대회를 거쳐 당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당장 일어날 분란을 미루거나 잠재울 수 있다. 좋은 쇄신방안이 마련된다면 민주당의 환골탈태를 기대할 수도 있다. 친이재명측과 반이재명측이 공멸을 피하기 위해 합의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방안이다. 본인은 정계은퇴를 선언했지만 김부겸 전총리 정도라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4. '고난의 행군'길에 들어선 민주당
지방정부는 정당의 풀뿌리 조직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다. 민주당은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서 연이어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전선을 형성해 일정한 성과를 거두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했다. 이번에 민주당은 광역 및 기초 지방정부를 대거 상실했다. 지방의원들도 크게 줄었다.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에 의탁했던 인력 수 천 명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빈약한 풀뿌리 조직으로 다음 총선을 치러야 한다. 대선 패배에 연이은 지방선거의 참패는 민주당에게 고난의 행군을 강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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