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규 칼럼니스트
정당 정치 실패의 결과로 나타난 0선 정치인들
세대교체 기대주 0선 여당 대표는 결국 파국
0선 대통령과 갓 뱃지 단 야당 대표가 맞서게 될 전망
1. 이준석 현상의 핵심은 선동적 포퓰리즘
2021년 6월, 이준석 후보가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되었다. 한국정당사에서 보기드문 놀라운 사건이다. 1970년 김대중 대통령이 제1야당 신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되었을 때 40대 중반이었고, 이미 국회의원과 대변인 등을 역임한 비중 있는 정치인이었다. 2010년 민주노동당의 대표가 된 이정희 의원도 젊은 대표 소리를 들었지만 만 41세였고, 현역 의원이었다. 만 36세에 한 번도 원내에 진출해보지 못한 젊은 정치인이 주요 정당의 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이준석 현상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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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일차적으로 주목한 것은 그의 젊음이었다. 일제히 세대교체에 방점을 둔 해석이 나왔다. 청년정치가 소환되었다. 피상적인 분석이다.
이준석 대표의 당선이 하나의 현상이 되고, 세대교체로 평가받으려면 이준석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등장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을 때 혼자가 아니었다. 김영삼, 이철승 등 쟁쟁한 동년배 정치인들과 경쟁했다. 그들은 함께 40대 기수론을 제창했고, 그 이후 야당의 주역은 완전히 교체되었다. 그에 반해 이준석 후보는 단기필마였다. 그가 대표가 된 이후에 청년 의제에 관심을 쏟고, 청년들을 대변인 등 당직에 많이 기용하고, 그에게 기대를 건 청년들이 대거 입당했지만 청년들이 국민의힘 주역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석 대표의 등장에는 현상이라 부를 만한 요소가 있다. 국민의힘 당원들의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빚은 결과라 보는 견해는 일부만 맞는 얘기다. 이준석 후보의 승리는 국민여론조사 덕이다. 당원선거인단 투표에서는 나경원 후보가 5,000여표 더 얻었다. 그 말은 국민의힘 외부의 힘이 당 대표 선출이라는 정당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좌우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당 외부의 선택은 기성 정치인 대신에 새로운 정치인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그 새로운 정치인은 대부분 선동적인 포퓰리스트이며, 이것이 여야를 떠나 한국정치 나아가 전 세계 정치의 흐름으로 고착되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선거운동 기간 중에 보여준 포퓰리스트로서의 재능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준석 현상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2. 0선 정치인 양당 대선후보 등장은 정당 정치 실패 의미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모두 의회 경험이 전무한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윤석열 후보는 정치 입문 3개월 만에 후보가 되었고, 8개월 만에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지냈지만 여의도 정치 바깥의 인물이고, 당의 주류에 속하지도 않았다. 윤석열 후보는 섣불리 규정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기성 정치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선거운동 기간 중에는 여성가족부 폐지 등 이준석 대표의 포퓰리스트적 선동에 동조했다. 이재명 후보는 포퓰리스트로 보기에 무리가 없다. 그런 후보들이 양당의 기성 정치인들을 물리치고 대선 후보로 선출된 것이다. 이것은 양당 기성 정치인의 실패이자 동시에 정당 정치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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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정치의 약화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 스티븐 레비츠키는 트럼프 당선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정당의 약화를 꼽았다. 레비츠키에 따르면 미국 정치사에는 헨리 포드, 찰스 린드버그, 조지 월러스 등의 극단주의자들이 끊이지 않고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유력 정치인들과 정당이 일종의 문지기 역할을 하면서 그들이 당의 주류로 진입하는 것을 막았다. 그는 ‘비민주주의가 지킨 민주주의’라는 역설적 표현을 썼다. 그러나 예비선거(프라이머리)가 강화되면서 정당의 기능은 약화되었고, 정당의 문지기 역할은 사라졌다. 그 결과 공화당의 전통적 가치와 동떨어지고, 당내 기반도 없는 아웃사이더이자 극단주의자인 트럼프가 공화당의 후보가 되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다당제인 유럽에서는 좌우의 포퓰리스트들이 기존 정당 안에서 도전하는 길 대신에 기존 정당에 불만을 품은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길을 택했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스페인의 포데모스,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등이 사례들이다.
극단주의자들이 기성 정당 안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포퓰리스트 정당이 출현하는 이유는 세계화 이후 불평등이 심화하고, 성장의 과실에서 소외된 중하위층의 박탈감이 커진 게 일차적 원인이다. 기성정당과 그 정당의 엘리트들은 중하위층의 불만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그 틈바구니를 뚫고 트럼프와 포퓰리스트 정당이 등장했다.
3. 국회경험 정당경험 부족한 대통령들 정당 정치 약화시켜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대통령도 유사한 사례로 간주할 수 있다. 예비선거와 유사한 국민참여경선이라는 새로운 제도적 환경의 도움을 받아 동교동계의 기득권 구조를 깨고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었다. 상대적으로 참신한 인물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재명 후보처럼 기성 정치권 밖의 인물이 아니다. 종종 승부수 던지는 것을 즐겼지만 대화와 타협 등 기성 정치의 문법에 충실했다. 당내 경쟁후보였던 이인재 후보와 같은 시기에 정치에 입문했고, 대선 경쟁후보였던 이회창 후보보다 오랜 정치경험을 가지고 있다. 민주당의 최고위원과 김대중 정부의 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포퓰리스트와 거리가 멀다. 정치학자 얀 베르너 뮐러는 포퓰리스트의 특징을 반엘리트주의와 자신만이 국민을 위한다는 반다원주의로 설명했다. (누가 포퓰리스트인가, 마티, 2017) 포퓰리스트는 종종 반엘리트적 수사를 남발하지만 더 결정적으로는 의회와 정당을 불신하고 대중과 직접 소통을 선호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의회와 정당정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기에 지지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를 강행했다. 박근혜 당시 야당대표에게 대연정과 선거제도 개혁을 제안할 정도로 정치적 다원주의를 추구했다.
오히려 정당과 의회를 약화시킨 것은 그의 뒤를 이은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세 대통령들이다. 야당은 물론이고 자신의 소속정당도 무시했다.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이라도 계파가 다르면 철저히 불신했다. 당을 청와대에 종속시키기 위해 친이, 친박, 친문 등이 차례로 등장해 당을 망가뜨렸다. 야당은 대화 상대가 아니었고, 의회도 국정의 파트너가 아니었다. 세 사람 모두 반(反)정치의 대통령이었고, 이는 모두 그들의 국회 경험과 정당 경험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한 차례 국회를 경험했을 뿐이다. 선거의 여신이라 불린 박근혜 대통령은 뛰어난 정당 지도자로 보였지만 아버지의 후광 때문에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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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대교체 대표였던 0선 청년주자 이준석 박지현의 파국
0선 야당 대표로 시작해 여당 대표가 된 이준석의 정치는 파국을 맞았다. 기존의 정치문법을 파괴하고 당 안팎에서 끊임없이 대결정치를 추구해온 본인의 언행이 자초한 일이다. 문법을 지키는 것이 정확한 의사표현을 위해 필요하듯이 정치권에서 오랜 기간 축적된 지혜의 산물인 정치문법은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원활한 정치적 소통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준석 대표는 마치 기존의 정치문법에서 벗어나는데서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반공보수와 거리를 취한 것과 스타일의 파격을 제외하면 이준석 정치는 기존의 보수정치보다 낳은 내용을 보여준 바가 없다. 0선 정치인의 한계다.
민주당은 0선 쇼도 파국으로 끝났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후에 만 26세의 정치 초년생을 공동비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다분히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겨냥한 선택으로 보인다. 박지현 전 위원장은 지난 대선 때 이재명후보 선대위에 참여하면서 처음 정치권에 빌을 들여놓았다. 국회는 말할 것도 없고 정당경험도 있을 리 만무하다. 정당 경험이 없고, 심지어 뚜렷한 사회경험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대선에 패배한 당의 비상대책을 맡긴다는 것은 제정신이라면 할 수 없는 결정이다. 따라서 실제로 무슨 일을 맡기겠다는 것은 아니고 쇼를 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박지현 전 위원장이 쇼를 거부하면서 민주당과 박지현 전 위원장 임명에 앞장선 이재명 의원은 상처를 입었다. 자업자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0선 정치인의 단점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를 쏟아낸다. 검찰총장인지 대통령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태도가 종종 보인다. 인사는 계속 말썽이다. 지지율 30%선이 위협받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과 야당에게 국정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전형적 0선 정치인의 모습이다. 여기에 맞서 이제 막 국회에 등원한 실질적 0선 야당 대표가 맞서는 정치가 펼쳐질 전망이다. 과연 두 사람이 상대방을 국정의 파트너로 간주하고 대화할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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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포퓰리스트 막으려면 정당 정치를 강화해야
0선 정치는 기성 정치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기성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정치인과 새로운 정치세력을 찾는 과정에서 0선 정치가 등장했다. 0선 정치는 기성 정치인과 정당이 스스로 쇄신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선 정치가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당정치의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성 정치를 변화시키는 자극제에서 끝나지 않고 포퓰리스트와 극단적 선동정치인이 등장할 수 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으로 정당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한 방안이다. 정당이 자체적으로 좋은 정치인을 길러내고, 선동 정치인의 진입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당의 주요 결정을 당원투표와 국민여론조사에 맡기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여론조사로 후보를 공천하는 방식도 정당의 역할을 약화시킨다. 나아가서 대통령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 대통령의 선거운동 방식이 미디어를 매개로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동정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SNS와 유투브의 등장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후보에 대한 심도 있는 검증이 불가능하다. 기성정치인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계속 새로운 정치인을 선호한다. 앞으로 정치경험이 1년도 안 되는 대통령이 또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에 반해 의원내각제 또는 책임총리제는 의원들에 의한 동료 평가를 통해 어느 정도 검증이 이뤄질 수 있다.
윤석규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YMCA 경실련 등에 몸담아오다 DJ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국장을 지냈다. 2002년 노무현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아 노무현 대선 전략의 밑그림을 그린 ‘정치전략통’이다. SNS 등에서 합리적 진보 논객으로 활동 중인 그는 날카로운 정치 분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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