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민 정치평론가
민주당, 검수완박 입법 강행 대신 '쇄신'을 동력 삼았어야
이재명 대선 득표율 47.8%, 윤석열 거부층이 몰린 효과 입증
지지율 반전 동력 잃은 민주당, 국민의힘 실축 기다려야 할 판
2022년 6.1 지방선거는 1998년 지방선거와 닮았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치러진 지선이고, 대선이 박빙 승부였다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1997년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40.27%를 득표해 38.75% 득표율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매우 근소하게 따돌렸다. 하지만 이듬해 6월 지방선거는 공동여당의 너끈한 승리였다. 당시 광역선거 16곳 가운데 새정치국민회의는 6곳, 자유민주연합은 4곳을 가져갔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6곳에서만 승리했다. 정권교체가 처음으로, 간신히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구여당이 패배한 것이다.
1998년 지선의 투표율은 52.7%였다. 1997년 대선 투표율 80.7%보다 크게 낮았을 뿐만 아니라 1995년 지방선거 투표율 68.4%보다도 15.7%포인트나 하락했다. 어느 쪽이 더 기권했을까. 1997년 대선의 김대중 지지자와 이회창 지지자 중 패배한 후자의 투표 열기가 더 떨어졌다.
이재명 등판과 검수완박 강행, 전 정권 심판 심리 강화 역효과
세월이 사반세기 흘렀지만 진 쪽의 사기가 저하된다는 법칙엔 변함이 없다. 투표율이 50.9%로 2022년 대선의 77.1%보다 크게 하락한 이번 지선에서 국민의힘이 이기는 것은 기본적으로 예측되는 결과였다. 대선의 득표율은 17개 광역단체장 선거에 그대로 대입하면 국민의힘 10 대 민주당 7이었는데, 지선에서 그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힌트도 이미 1998년 지선에서 나온 셈이다.
민주당이 지선에서 이기려면 다음의 조건이 만족되어야 했다. 첫째,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이 최대한 투표장에 나와야 한다. ‘아깝게 졌으니 이번에는 더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말이다. 둘째,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지지를 보내지 않은 제3후보 지지층이나 비투표층이 투표소에 나와야 한다. ‘막상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으니 당혹스럽다. 견제해야겠다’는 심리다. 셋째, 대선에서 마지 못해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한 유권자들이 지선에서 기권하거나 기표구를 민주당으로 옮겨서 찍는 것이다. ‘정권교체는 되었으니 권력은 분산해줘야겠다’쯤 될 것이다.
‘민주당 지지’보다 ‘윤석열 견제’의 폭이 넓다. 민주당의 과제는 이런 여론을 긁어모아야 했다. 그런데 이는 열심히 ‘윤석열 견제’를 외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방금 출범한 정부에 대해서는 견제론이 정면으로 먹히지 않는다. 유권자가 스스로 ‘견제해야 한다’고 느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민주당 스스로가 쇄신에 나서는 것이다. 대선이 끝난 3, 4월 당내의 시끄러운 소리가 전국토를 울릴 만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5월 들어 혁신 방향을 확정 짓고, ‘개혁 공천’으로 선거에 나서는 것이다. 당의 특정 부류가 돋보이지 않고 여러 인물들이 광역단체장 후보진을 이뤄 팀 워크로 선거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민주당이 한 일은 ‘검수완박(검찰수사권완전박탈)’ 입법 강행과 이재명 전 후보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등판이다. 이렇게 되면 ‘새 정부를 향한 견제’가 아니라 ‘전 정권에 대한 추가 심판’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이 싫어 억지로 이재명을 찍은 사람들’은 선거를 내려놓게 된다. 그 결과 민주당 지지층 내지 국민의힘 거부층의 투표율은 떨어졌다.
지난 대선 이재명 후보의 47.8%는 민주당 지지율이나 정권연장 여론을 이 후보가 끌어올려서 거둔 성과가 아니라, 도저히 국민의힘에 투표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몰린 결과임이 지방선거를 통해 사후에 입증된 것이다.
앞으로 민주당 지지율의 추이는 국민의힘에게 달렸다. 민주당은 스스로 지지율을 올릴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 선거에서 패배한 당이 새로운 승부를 준비하는 경로가 있다. ‘주류가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 비주류가 당을 쇄신한다. 구주류 중 일부가 비주류의 손을 들어주며 신주류를 형성한다’. 민주당은 비주류가 극소수이며 주류는 친문직계, 이재명계, 이낙연계로 분열되어, 서로 상대방이 ‘주류로서 책임이 있다’고 우기고 있다. 국민의힘 정권 지지율이 이명박 정권 때나 박근혜 정권 중후반기 수준으로 떨어져야 그나마 민주당에 틈이 열릴 것이다. 다만 여당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 또한 야당에게 달려 있다는 걸 감안하면, 그 또한 기대하기가 어렵다.
민주당과 공동행보냐, 독립노선이냐 방향 잃은 정의당
이번 지선의 참패자인 정의당도 앞날이 뿌옇다. 2018년 지선, 2020년 총선만 해도 정의당은 정당명부 비례대표에서 10%에 가까운 지지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전북과 전남에서만 1석씩의 광역의원 비례대표 당선자를 냈고, 서울 4.01%, 부산 2.62% 등 전국적으로 부진한 성적을 올렸다. 정의당은 쇄신의 방향조차 쉽게 잡지 못할 것이다. 민주당으로부터 독립된 노선을 추구하는 유권자와 민주당과의 공동행보를 선호하는 유권자 중 어디가 더 이탈했을까? 양쪽 다 적지 않았을 수 있고,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를 측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지지율 우위 확보하려면 정강정책 중도화 이뤄야
투표율 저하 속에서 승리한 국민의힘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선거에서 등 돌린 기권층이 다시 투표소를 찾을 경우 국민의힘의 상승세는 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 지형은 결코 ‘보수 우위’로 바뀌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우위를 확보하려면 정강정책에서 중도화를 이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당내 노선투쟁이 일어나며, 어느 쪽이 승리할까? 극단적 보수 성향 지지층에게 휩쓸려 들어가면 민주당의 거울상이 될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부터 상승하던 투표율 흐름이 꺾여 내려가는 시나리오가 유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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