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혁수 기자
진병준,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 만들어 내리 16년째 위원장
조합원 명부 부풀려 산별노조 가입하고, 국가보조금 횡령
위장노동상담소에 가족들 상담원 등록시켜 급여 명목 횡령
진병준 구속 이후 건설산업노조 사분오열…쇄신 여론 비등
한국노총 산별노조인 건설산업노조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와 함께 양대 건설노조로 꼽힌다. 건설 현장에서 건설산업노조는 곧 권력이다. 노조 조합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각종 협상을 주도한다. 때로는 조합원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이유로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의 현장 퇴출을 요구하고, 건설사업자로부터 돈을 뜯어내기도 한다.
건설산업노조를 분류하는 기준인 산별노조는 동일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노총에서 산별노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1만명 이상의 조합원을 보유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전국의 산별노조는 한국노총에 28개, 민주노총에 6개만 존재할 정도이며, 한국노총은 산별노조위원장을 당연직 부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있다. 국가도 각종 교섭에서 산별노조의 위원장을 교섭 상대로 인정하고 있다. 그만큼 건설산업노조의 위상은 높다.
구속된 진병준 건설산업노조 위원장은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의 터줏대감이다. 진 전 위원장이 2007년 건설산업노조를 설립해 지금까지 16년째 단 한번도 위원장직을 놓지 않고 연속 건설산업노조 위원장을 맡아왔다. 사실상 '건설산업노조=진병준 위원장' 이었고, 건설산업노조는 '진병준 왕국'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성이 깨져나가고 있다. 진병준이 10억원 가량의 횡령과 정치인 불법후원 사건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구속되면서부터다. 이에 더해 사기, 국가보조금 횡령,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경찰 추가 수사도 받고 있다. 진병준 왕국은 어떻게 건설됐으며, 어떻게 무너져 내리게 됐을까?
조합원이나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 짐작하는 일이지만, 건설산업노조 진병준 왕국은 지금까지 불법적 관행의 터전위에 서 있었다.
1. 진병준,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 어떻게 세워갔나
"진병준은 애초 노조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민주노총 덤프연대 전직 고위 간부가 뉴스버스와 통화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한 말이다. 뉴스버스는 이 간부를 통해 진병준이 과거 민주노총에 잠시 몸담으면서 벌어진 일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진병준은 민주노총에서 노조 활동을 처음 시작했다. 덤프트럭 기사였던 진병준은 2004년 민주노총 덤프연대의 충남지부 간부였다. 어느날 진병준이 충남지부의 다른 간부들과 함께 덤프연대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의 손에는 사업기획안이 들려져 있었다.
진병준이 덤프연대 고위간부에게 제안한 기획안의 내용은 충남 천안에 자동차 정비소를 차리고 덤프연대 충남지부 소속 조합원들 트럭의 타이어, 엔진오일 교체 등 일부 정비를 도맡아서 하겠다는 것이었다. 거리가 문제가 된다면 다른 지점을 설립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겠다며, 사업으로 발생하는 이익금은 본조와 지부가 반씩 나눠갖자고 했다.
"진병준이 설명하는 것을 듣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노동조합법 위반도 위반이지만, 조합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겠다는 발상이 놀라웠다. 그래서 안 된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그랬더니 노조를 나가버렸다"
사업 제안을 거절당한 진병준은 자신이 간부로 있던 충남지부 800여명을 이끌고 덤프연대를 탈퇴했다.
2. 진병준이 쌓아올린 거짓의 성
진병준은 자신을 따라 탈퇴한 충남지부 간부들과 함께 2007년 건설산업노조의 전신인 '건설기계노조'를 세웠다. 건설산업노조 간부에 따르면 함께 탈퇴한 간부 중 나이가 가장 어렸던 진병준이 노조위원장직을 떠맡다시피 맡았다. 그는 노조 법인의 대표자로 자신의 부인을 등록했다. 통상 위원장 본인이나 사무처장을 대표자로 내세우는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자신의 노조를 세운 진병준은 한국노총 가입을 원했다. 건설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양대노총의 타이틀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민주노총은 제발로 나왔으니 선택지는 한국노총밖에 없었다. 마침 조직확대 사업을 하던 한국노총은 진병준이 이끌던 건설기계노조를 회원노조 후보군으로 보고 있었다.
문제는 규모였다. 한국노총의 정식 회원노조가 되려면 산별노조를 구성해야 하는데, 한국노총에서 산별노조로 인정받으려면 조합원수 1만명을 넘겨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진병준은 가짜 조합원 가입원서를 작성해 한국노총에 제출하고 산별노조로 인정받았다.
3.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다
산별노조로 인정받고 한국노총의 회원조합이 됐지만, 실제 조합원 수가 적었기 때문에 건설산업노조는 초창기 재정난에 시달렸다. 건설산업노조 관계자들에 따르면, 재정이 안정화되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2013년부터 진병준은 국가에서 지급되는 보조금을 빼돌렸다. 건설산업노조는 2013년 8월 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 건설산업노조 서울사무소에 '건설노동상담소'를 열었다. 건설노동자 고충처리를 전담하는 국내 최초의 상담소를 설치하겠다는 취지였다. 고용노동부는 2013년 하반기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5차례에 걸쳐 9,2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건설노동상담소는 실제 운영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건설노동상담소 설립 초기 상담실장으로 등재됐던 관계자는 "실제 상담을 진행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건설노동상담소 운영에 사용하라며 고용노동부가 지급한 보조금은 진병준의 가족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진병준은 자신의 부인과 자녀, 동생을 잇따라 건설노동상담소 상담원으로 등록한 후 매달 120만~180만원씩의 급여를 지급했다.
건설산업노조는 2018년 민주노총 일부 인사들의 합류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5,000명을 장담하기 어려웠던 조합원수는 순식간에 1만5,000명 규모까지 늘어났고, 재정에 숨통이 트였다. 그러자 진병준은 조합비를 횡령해 사적으로 유용하기 시작했다.
뉴스버스가 확보한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 내부 회계자료에 따르면, 진병준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약 10억원의 조합돈을 임의로 사용했다. 건설산업노조 사무처가 관리하는 조합비 통장 외에 별도 계좌 3개를 개설해 사무처 회계 담당자에게 돈을 송금하라고 지시했다. 진병준은 이 돈을 현금으로 출금해 사용했다.
사무처 직원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했다가 아들 통장으로 돌려받아 사용하기도 했다. 진병준의 건설산업노조 법인카드는 경기 안성, 경남 창원 등에서 집중적으로 사용됐는데 용처에 대해 정확히 소명하지도 않고 있다.
4. 수 년간 횡령…왜 지금까지 조용했을까?
진병준이 수년에 걸쳐 돈을 빼돌렸음에도 그의 행각이 뒤늦게 드러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노총 건설노동자들은 한국노총의 묵인과 정치권의 비호가 뒷배경이 됐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진병준은 산별노조 지위를 인정 받기 위해 노조원 수를 1만명 이상으로 부풀린 조합원 명부와 가짜 가입원서를 2009년 한국노총에 제출해 한국노총 산하 산별노조가 됐다.
이후 2014년 내부자 고발로 경찰 수사 과정에서 조합원 명부 조작 사실이 들통나자,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사무처 간부 A씨에게 '한국노총 본조를 찾아가 자신들이 제출한 조합원 가입원서를 받아오라'고 지시했다.
당시 진병준은 한국노총 조직강화본부 조모씨에게 "조합원 가입원서를 3일만 보고 돌려주겠다"고 이야기를 한 상황이었다. 진병준은 2015년 11월 A씨를 통해 한국노총이 보관하고 있던 조합원 가입 원서를 전달받았고, 이후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 측도 "조합원 가입원서를 보관하지 않고 있다"고 말을 맞췄다. 이 때문에 진병준은 사문서위조죄만 인정되고, 위조사문서행사에 대해선 무죄를 받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아 수감 생활은 면할 수 있었다.
진병준은 지난 2020년 1월에는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진병준은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 당일인 2020년 1월 21일 점심식사 겸 사전미팅을 한다며 투표권을 가진 건설산업노조 선거인단 50명을 잠실실내체육관 부근 고깃집으로 불러낸 후 건설산업노조 간부를 통해 "김동명 후보에게 투표하라"고 지시했다. 진병준의 지시를 받은 건설노조 간부는 선거인들이 실제 김동명 후보에게 투표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카카오톡에 단체방을 만들어 기표한 투표용지를 사진으로 찍어 전송하도록 했다.
당시 김동명 후보는 1,580표를 얻어 1,528표를 얻은 김만재 후보(금속노련 위원장)를 불과 52표차로 앞서 한국노총 위원장에 당선됐다. 진병준의 투표지시로 인해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 당락이 결정된 셈이다.
진병준은 이해관계가 있는 정치인들에게 불법적으로 정치자금을 후원하기도 했다. 진병준은 노조 관련 업무를 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과 자신이 본거지를 두고 있는 충청 지역 정치인 등 4명의 국회의원에게 각각 수백만원씩을 쪼개기 후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5. 내분에 무너진 진병준…건설산업노조는 사분오열
진병준의 범죄 행각은 건설산업노조에서 내분이 벌어지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진병준이 지부장 일부와 알력다툼이 벌어지자 자신과 다툼을 벌인 지부장들의 조합원 권리를 정지시키는 징계를 내렸고, 지부장들은 진병준이 횡령을 저질렀다며 경찰에 수사의뢰서를 제출했다.
자신의 횡령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진병준은 수사기관의 수사에 대비해 회계장부를 조작하기로 마음먹고 회계사를 고용했다. 회계사가 장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추가 횡령 혐의가 잇따라 발견됐다. 건설산업노조 사무처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진병준이 처음에는 횡령이 없다고 자신하더니, 그 다음엔 2억, 그 다음엔 4억, 이런 식으로 까도 까도 횡령한 돈이 자꾸 튀어나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를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건설산업노조 사무처 직원들은 경찰 수사에 협조하기로 마음먹었고, 진병준의 횡령 내역이 정리된 회계자료를 충남경찰청 반부패수사대에 넘겼다. 내부 회계자료가 경찰 손에 넘어가면서 수사에 탄력이 붙었고, 진병준은 구속수사를 받게 됐다. 그렇게 진병준이 쌓아올린 16년 아성이 무너져 내렸다.
진병준은 구속된 후 지난 17일 건설산업노조에 사퇴서를 냈지만 아직 건설산업노조 중앙위원회에서 진병준의 사퇴는 의결되지 않은 상태다.
그 사이 건설산업노조는 노조를 해체하고 뿌리째 바꿔 재탄생시켜야 한다는 쇄신파와 틀을 유지하면서 수습하자는 쪽, 그리고 여전히 진병준 전 위원장을 옹호하는 세력 등으로 사분오열됐다.
한국노총은 지난 20일부터 상벌위원회를 구성해 건설산업노조에 대한 징계절차를 논의하고 있다. 논의되고 있는 징계사유는 진병준의 간부윤리강령 준수의무 위반, 조직질서 문란, 한국노총 위상과 명예 손상 등이다. 한국노총은 이 같은 징계사유를 건설산업노조 관계자들에게 전달하고 의견서 제출을 요청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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