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문화

(52)
제헌 의원이 된 베르디 vs 스캔들 끝에 사면된 바그너 김용만 음악칼럼니스트 프레너미 시리즈 8 '이탈리아 오페라의 제왕 베르디 & 독일 음악극의 절대자 바그너'(5) 19세기 유럽 열강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통일을 이룬 나라는 독일과 이탈리아였다. 600년을 이어온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가 신성 로마제국의 허울을 유지하며 중부유럽 핵심부를 지배하는 강자로 버티고 있는 가운데, 독일은 아직 제후국들로 분열되어 있었다. 그 무렵 이탈리아 역시 교황령과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는 북부, 프랑스의 영향권 아래 있는 남부, 베네치아 중심의 자치공화국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두 나라는 혁명과 전쟁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1848년 혁명의 물결은 이 두 나라에도 밀어닥쳤고, 젊은 혁명세력은 피해만 입은 채 물러나야 했지만 혁명의 에너지는 다른 쪽으로 분출했다. 독일은 ..
순결한 좌파, 현실과 역사를 응시하다 - 이상호 작가 심정택 칼럼니스트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파고 들어가는 이상호 작가는 2022년 8월, 서울 식민지역사박물관 전시, 에 ‘일제를 빛낸 사람들’을 출품하였다. 친일부역자 92명 모두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이 채워져 있다. 등장 인물들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기준으로, 군인·경찰·관료·언론·문화예술 부문에서 간추렸다. 박정희·노덕술·방응모·김성수·김기창·김은호·최남선·이광수·서정주·안익태·김활란·백낙승·전봉덕·우범선 등이다. 이상호는, 해방직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정치적 와해로 처벌을 피해간 친일 부역자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았다면 이러한 모습으로 법정에 섰을 것이다”고 말한다. 조선시대 초상화 기법으로 의습(衣習)을 간단한 선으로 처리했다. 1945년..
조국을 위로한 베르디 vs 떠돌이 망명자 바그너 김용만 음악칼럼니스트 프레너미 시리즈 8 '이탈리아 오페라의 제왕 베르디 & 독일 음악극의 절대자 바그너'(4) 혁명(革命 Revolution)은 어떤 사회를 급격히 그리고 총체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교체를 넘어서 이념적 변화로 인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사회 시스템에 있어서 급격하면서도 근본적인 체제의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대개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이루어진다.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추구하는 변화는 개혁이라고 부른다. 혁명의 상황에서 합법과 비합법은 무의미하게 된다. 프랑스대혁명에서 기존 부르봉 왕조의 검사와 판사들은 상당수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반대로 혁명에 실패해 반란분자가 되면 제도권력 전체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특히 권위주의 독재권력일수록 더욱 그..
일본 근대화의 시작과 끝, 나가사키 (상) 하광용 에세이스트 일본 vs 포르투갈 / 네덜란드 / 미국 덴츠 연수를 간 적이 있습니다. 3일에 불과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당시 도쿄 긴자에 있던 그 본사의 14층 교육장에서 도시락을 시켜 먹어가며 꼬박 수업에만 매달렸습니다. 당시 제가 근무하던 광고대행사 오리콤과 덴츠 간에 업무 협약이 맺어져 입사 동기들과 함께 소위 선진 광고 기법을 배우러 간 것입니다. 덴츠는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에서 가장 큰, 아니 단일 광고회사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광고대행사입니다. 당시 오리콤은 직원 수가 300명 규모였고 덴츠는 6,000명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세계 7위권의 광고산업 국가이고 이노션, 제일기획 등 글로벌 마켓에서도 큰 손인 광고대행사를 보유하고 있기에 연수를 하러 덴츠를 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전설의 조선검 김체건과 김광택, 일본·청에 검을 겨누다! 김준혁 항거의 역사 김준혁 한신대 교수 전설의 조선검, 김체건(金體乾)!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검인(劍人)으로 불리는 김체건, 훈련도감 교관에 불과했던 그가 어떻게 전설의 조선검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 그의 아들 김광택은 영조의 호위무사이자 금위영 교련관으로 검선(劍仙)이라 불렸다. 검의 신선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김체건의 무예는 그의 아들 김광택에게 전수됐고, 김광택의 무예는 임수웅과 백동수에게로 전달되었다. 임수웅은 사도세자의 최측근 무사였고, 백동수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의 최측근 무사였다. 참으로 특별한 인연이다. 사도세자는 임수웅와 함께 1759년에 『무예신보』(武藝新譜)를 만들었고, 정조는 백동수와 함께 1790년에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무예도보통지』는 장용영..
소멸을 향한 존재들의 적요한 운명을 사진에 담다-조현택 심정택 칼럼니스트 조현택 개인전 '집과 벽', 경기 수원시 예술공간 '아름'에서 28일까지 2021년 4월 제13회 광주비엔날레 1전시실에서 2전시실로 이동하는 통로엔 절이나 성당에서 볼 법한 불상과 성모마리아상이 가지런히 놓인 작품이 전시되었다. 부처님과 성모마리아가 한데 모인 현장은 돌로 만든 조각상을 파는 석재상이다. 사진작가 조현택은 ‘스톤 마켓’(stone market)에 주목했다. 사찰이나 성당에 놓이기 전의 조각상 또는 조각공예품인 사물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제조 공장도 겸하는 판매상의 그 석조상 앞에 음료수와 과일을 놓았고, 손을 모으고 절을 하는 광경도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채석장과 가까운 도시 외곽에 위치한 석재상, 석재조형물 회사들은 미륵상과 같은 불교 석상, 무속의 조..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 하이든 vs 3자매와 사랑한 모차르트 김용만 음악평론가 프레너미 시리즈2- '파파 하이든 & 신동 모차르트' (3) 변성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독립의 길로 내몰렸던 성악애호자 하이든은 10년의 무명 시절 고생을 겪었다. 하지만 이후엔 모르친 백작의 궁정악단을 거쳐 오스트리아 제국의 대귀족이었던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악장으로 30년간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은퇴했다. 안톤 파울과 니콜라우스 두 후작의 지극한 음악사랑으로 인해 하이든은 돈 쓸 시간이 없었다. 덕분에 하이든은 돈을 모을 수 있었고 말년엔 런던에서 뜨거운 인기까지 얻어 유복한 생활을 했다. 반면 고전시대의 쌍두마차인 모차르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 겸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어려서부터 유럽 곳곳을 방문한 연주여행을 통해 신동연주자로 명성을 얻었다. 하이든과는 달리 틈만 나면 고약한 ..
두려움을 이용한 '명량', 두려움을 각인시킨 '한산:용의출현' 김주희 영화칼럼니스트 명량은 '희생'의 이순신, 한산은 담대하고 담담한 젊은 이순신 (이하 한산)과 의 주요 차별점은 두려움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김한민 감독은 에서 왜군이 왜 이순신(박해일) 장군을 두려워하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에서는 지휘부를 비롯한 수군과 백성들의 왜군에 대한 두려움을 이순신(최민식) 장군이 어떻게 용기로 바꾸어 승리했는지를 잘 묘사했다. 즉, 은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해전을 위한 철저한 준비과정, 그리고 학익진과 거북선을 이용한 압도적인 승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은 수적으로 엄청나게 열세인 상황에서 지형(울돌목)을 이용한 전술에 백성들의 도움을 통한 승리를 전시했다. 이러한 차이점은 한산도 대첩과 명량대첩 당시 너무도 달랐던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상황에 기인한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