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지휘권 폐지, 민주당 반대시 불발 가능성
검수완박, 尹 대통령 취임하면 거부권 행사 가능성
대안1, 법무부장관 수사지휘권 위원회 통제
대안2, 독립 수사청 만들어 검찰총장 권한 분산
‘우면산 전투’.
추미애 법무부와 윤석열 검찰의 싸움을 가리켜 내가 썼던 말이다. 법무부가 있는 경기 과천 정부청사와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사이에 우면산이 있다. 이제 ‘고지전’은 정부와 국회가 벌이는 ‘포격전’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국회 다수파인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수사권완전박탈)’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고, 윤석열 정부는 검찰 수사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양측은 두 가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에서 상대방이 ‘갑’의 위치에 있다. ‘검수완박’에서 갑은 윤석열 당선인이다. 법안 통과 시점이 취임 이후라면 법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이 거부한 법안을 재의결하려면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민주당이 친(親)민주당 무소속과 위성정당들의 의석을 모두 모아도 의석 점유율은 2/3에 못 미친다. 반면 ‘법무부장관 수사지휘권 폐지’에서 갑은 민주당이다. 국회에서 검찰청법을 개정해야 하니 민주당이 반대하면 이룰 수 없다.
둘째, 검찰 문제로 오래 공방을 벌이는 것을 국민들이 마뜩치 않아 한다는 점이다. 2021년 3월 LH사태 당시 다수 국민은 검찰이 수사를 할 수 없다는 데, 즉 검경수사권조정의 결과에 불만을 가졌다. 아예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는 것은 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검수완박은 이번 대선에서 패배한 정책이라고 봐도 좋다.
그렇다면 승리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검찰 문제에 몰입해도 좋은가. 문 정부와 민주당이 민심을 잃은 것은 단순히 검찰 정책의 내용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다른 분야를 제쳐두고 검찰 문제에 몰입했던 게 더 결정적이었다. 주체가 ‘윤석열’로 바뀌어도 달라질 것은 없다. 대선 기간에도 당선인은 자신이 공수처 사찰의 피해자임을 강조했지만, 여론의 반향은 크지 않았다. 아니, 윤 당선인은 더 조심해야 한다. 본인이 검사 출신이기 때문이다.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이런 기대를 갖고 있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와 추미애 전 장관이 검찰에게 수사지휘권을 함부로 휘둘렀으므로, 국민들이 법무부장관 수사지휘권 폐지를 찬성할 것이다.’ 수사지휘의 내용이 틀렸거나 지휘권 발동이 남용되었다고 해서 지휘권 폐지를 지지한다는 법은 없다. 거꾸로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다. “추미애 같은 사람이 검찰총장을 해도, 그를 제어할 법무부장관 지휘권이 필요없는가?”
‘법무부장관 수사지휘권 폐지’에 관한 여론조사가 하나 나와 있다. 수사지휘권 폐지와 관련 처음 실시돼 충분히 공론화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은 유의해야 하지만, 여론 상황을 어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 3월 26~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41.1%가 폐지를 반대했고, 찬성은 38.0%다. 찬반이 비긴 셈인데 이런 경우 더 설치는 쪽이 열세에 빠질 수 있다. ‘잘 모르겠다’가 20.9%나 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국민적 관심도가 비교적 낮다는 의미를 띤다. (이 조사는 100% 무선 ARS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응답률은 8.4%,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해법을 빨리 마련할수록 좋다. ‘법무부장관 수사지휘권’은 ‘존치/폐지’의 이분법을 벗어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양쪽 의견의 합리적 핵심을 취해보자. 수사지휘권은 분명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다만 폐지될 경우 법무부장관의 권력이 검찰총장에게 옮겨가면서 마찬가지로 권력 집중과 전횡의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존치되는 경우와 폐지되는 경우, 각각에 걸맞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1)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를 위원회가 통제하는 것 2)검찰 분권으로 총장 권력을 축소하는 것이다.
존치되는 경우에는 법무부장관이 독단적인 행사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른 떠올려볼 수 있는 장치가 ‘위원회’다. 장관이 수사 지휘를 하려고 할 때 위원회가 심의 내지 의결을 맡는 것이다. 국회, 전문가, 시민사회의 추천을 받은 인사들로 위원회를 신설해도 되고, 기존의 수사심의위원회 같은 기구에 맡기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위원회의 반대 의견이 다수라면 수사지휘에 대한 논란이 커진다. 이 기구가 의결권 없이 의견만 개진할 수 있다 해도 무시 못할 효과가 날 것이다.
폐지되는 경우에는 검찰 내부의 분권을 강화해 검찰총장의 힘을 빼줘야 한다. 여기서 윤석열 당선인이 스스로 접어버린 정책을 상기하고자 한다.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사퇴 직전인 2021년 3월 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검찰의 영향력이 커서 문제라면, 오히려 소추기관을 쪼개 독립된 검찰청들을 만들라고 주장해왔다.” 국민일보는 ‘검찰총장 지휘 밖에 반부패검찰청·금융범죄검찰청·마약범죄검찰청 등을 두는 식’이라고 부연했다. 이는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초기에도 피력했던 입장이고, 전임인 문무일 검찰총장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던 정책이다. 어쩐 일인지 윤 당선인이 대선에 도전하는 와중에 이런 정책은 사라졌다.
수사청 분립 정책은 ‘수사/기소 분리’에 관한 대안도 된다. 윤 당선인이 말했던 것은 검찰과 경찰이 함께 일하며 수사와 기소가 융합된 수사청이다. 민주당은 ‘검찰은 기소와 공소 유지만, 수사는 경찰이’를 금과옥조처럼 여기지만, OECD 국가 대다수는 검찰에게 수사지휘권과 직접수사권이 있다. 특히 대자본이나 정치권력을 상대하는 특수수사 사건은 난이도가 높고 범죄자가 빠져나갈 우려가 크기에, 수사 당사자가 공소 유지까지 담당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윤석열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법무부장관 수사지휘권’ 하나만 보지 말고, ‘존치하되 통제’와 ‘폐지하되 검찰총장의 힘 빼기’ 카드 중에서 선택을 검토해봄직하다. 민주당은 검수완박 카드를 내려놓고, ‘수사/기소 분리’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 분야별 수사청 설치로 검찰 분권을 추구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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