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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청와대 둘러보니, 국민들과 함께(與民)는 불가능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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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현탁 여행작가 
 

지난 정부까지 청와대에서 대통령비서들이 통상적인 업무를 수행했던 여민관(위민관)에서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까지의 거리는 500미터로, 보통걸음으로 10분정도 걸린다. 또 관저까지는 600미터로 그보다 더 멀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초기 대통령 집무실을 여민관에도 마련하여 소통이 쉽도록 한다고 발표까지 하였는데, 임기 내내 그렇게 하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보도에 따르면 급한 보고의 경우 ‘뛰어 가거나 자전거를 이용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대통령께서는 주로 본관에서 일 하셨던 것 같다. 

청와대 동쪽 춘추관 입장문. (사진=황현탁)

낮 시간에는 관람 희망자가 많아 당첨이 어려울 것 같아 제일 이른 아침 7시에 관람을 신청하였더니, 단번에 당첨되었다. 아마 이른 시간이고 65세 이상 어른은 별도로 정원을 관리해서 그런 것 같다.

공무원으로 재직해 1990년대에는 자주 여민관을 드나들었고, 해외근무 기간 중에는 대통령을 예방하기 위해, 국내 근무 기간 중에는 연 초 업무보고에 배석하기 위해 본관을 여러 번 방문하였으며, 2007년 방문이 마지막이었다. 물론 방문 장소는 본관 또는 여민관이며, 청와대 경내에서 건물이나 시설물 사이를 이동해본 적은 없다. 

청와대 서쪽 영빈관 앞 분수대.(사진=황현탁)

제20대 대통령이 취임한 5월10일부터 개방된 청와대 경내를 관람하였다. 그동안 대통령과 비서들이 당연히 국민들을 위해 ‘위민(爲民)’한다고 불철주야 일하였겠지만, 국민들과 함께하는 ‘여민(與民)’은 불가능한 건물임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었다. 몇몇 관람객은 얘기도중 “대통령이 이런 구중궁궐에서 생활하니 어떻게 외부 사정을 알았겠나?”란 탄식도 들려왔다. 더구나 관저마저 구중심처에 있어 출퇴근할 때 차창을 통해서라도 외부를 살펴 볼 기회마저 없으니 ‘외계인과 다름없이’ 살아왔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국민들과 더불어 함께하는 대통령을 염원하는 기대를 고려하면, 대통령실 이전은 잘한 결정이란 생각이다. ‘천하에서 제일 복된 땅(天下第一福地)’인 청와대 지역을 보고자하는 국민이 수백만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있어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국민뿐 아니라 비서와도 동떨어져 일하고 생활하는 대통령의 거처 때문이다. 

청와대 본관 앞을 둘러보는 탐방시민들. (사진=황현탁)

대통령이 일하고, 사는 곳이니만큼 규모가 크고 웅장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반 국민이나 그곳에 근무하는 비서가 ‘위압감’을 받거나 적막강산처럼 느낀다면 여민은 아닐 뿐더러 위민도 어려울 것이다. 아직 시설물 내부는 공개되지 않고 있어 집기, 비품이 어떤지는 모르나, 대통령 밥그릇이 두 세배 크거나 침대가 대여섯 배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거주에 불편함이 없도록 환풍이 잘되고 겨울여름나기가 편리하도록 시설을 구비하는 것은 당연하다. 관저나 본관의 외관을 보니 생활의 편의나 국민과 함께하겠다는 심모원려보다는 ‘대통령의 권위’를 보여주려는 건물구조와 배치임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청와대 내 대통령 관저. (사진=황현탁)

입장하는 곳이 3곳이지만 경내에는 동선 표시를 잘 해 놓아 이동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 장소, 파손된 불전함, 외부 등산로나 한양도성 탐방로와의 연계 등 호기심이 가득하고 궁금한 것이 많은 관람객들의 문의에 충분히, 일일이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종전의 청와대 경비병들이 곳곳에서 안내요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그들에게 문화유산해설사 역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만큼 좀 더 자세한 인쇄물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또 ‘天下第一福地’라는 각자가 새겨진 바위는 안전을 고려해 개방하지 않고 있어 볼 수 없었다. 늦은 봄이어서 날씨가 좀 더웠으나, 녹음이 우거지고, 쉼터나 벤치를 곳곳에 설치해 큰 불편은 없었으며, 간이 화장실도 여러 곳에 준비해 놓았다. 공연이나 이벤트도 준비해 놓았으나, 특정한 날짜나 시간에만 행해져 즐길 수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기념 식수한 나무와 기념석. (사진=황현탁)

당초에는 5월 22일까지 신청을 받아 추첨을 통해 당첨된 사람들만 관람토록 하였으나, 신청자가 폭주하자 6월까지 한 달 더 연장했다. 당첨된 사람들에게 지난 정부의 관람 요령을 안내하여 셔틀이 운행되는 것으로 일부 혼선이 있었는데, 각자 청와대 동편 삼청동이나 서편 통의동 쪽의 입장 문으로 방문예정시간 전에 도착하면, 바코드 스캔 후 입장이 허용된다. 매 2시간마다 6,500명을 입장시키고 있다. 

청와대 경내에 있는 보물 석조여래좌상. (사진=황현탁)

청와대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안내 자료에는 ‘미남불’로 표기), 사적으로 지정된 칠궁,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된 침류각 등 문화재가 다수 소재하며, 이런 문화재 말고도 예산으로 구입한 미술품들이 다수 있을 것이다. 관람 중 야외에 전시된 조각 작품은 1점 밖에 보지 못했으나, 많은 미술품들이 건물 어딘가에 걸려 있거나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와 미군정시대에도 총독이나 사령관의 관저가 그곳에 있었으므로 이미 한 세기가 되어간다. 나아가 4.19의거 당시 발포나 무장공비 침투 등 근현대사에서 청와대가 갖는 상징성도 상당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여 청와대를 박물관, 기록관, 기념관, 전시관 등 무엇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에 대한 공론작업을 거쳐, 주변지역에 난개발이 시작되기 전에 마스터플랜을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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