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영화칼럼니스트
박찬욱 감독 전작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와 다른 사랑의 방정식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또 다른 사랑의 방식에 관한 영화다. 형사와 피의자로 만난 남녀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파괴한다. 영화 작품으로서 새로운 시도이자 신선한 형식의 사랑일 수 있겠으나, 솔직히 감동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장해준(박해일) 형사가 송서래(탕웨이)에 느끼는 동질감과 호감에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더불어 상업영화의 빠른 템포와 리듬감에 익숙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잔인하거나 피가 낭자한 참혹한 장면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은 눈에 띈다. 박찬욱 감독은 만드는 영화마다 이전 작품들과 매우 차별화한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박찬욱 전작과 사뭇 다른 박찬욱 영화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전작과 사뭇 달랐다. <올드보이>의 장도리 장면도 없었고, <박쥐>와 달리 피가 낭자하지도 않았고, <아가씨>의 잔혹한 고문 장면도 없었다. 사랑의 방식도 이전 영화에서도 보여준 사랑의 방정식과 차이가 있었다.
<올드보이>에서는 근친상간을, <박쥐>에서는 흡혈귀가 된 신부(송강호)의 빗나간 사랑을, <아가씨>에서는 동성애를 다루었다면, 여기서는 형사와 용의자 간 사랑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붕괴시키는 남자(해준)와 그의 미제 사건으로 남아 그가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고 기억해 주길 바라는 중국인 여자(송서래)에 관한 얘기다.
그렇지만, <박쥐>에서 성당의 신부가 사랑을 하고,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등 ‘신부’ 직업에 매우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점과 <헤어질 결심>에서 송서래를 보호하기 위해 해준이 형사로서 자신의 엄격한 직업 윤리의식을 버리는 점은 유사하다. 단지 해준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만을 파괴하지만, <박쥐>의 신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그녀의 남편을 죽인다. 마치 <헤어질 결심>에서 송서래가 처음에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한국인 남편을 죽이지만, 두 번째는 해준 형사를 위해 살인을 유발하듯이. 결국 서래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과 다른 사람을 희생한다는 점에서는 <박쥐>의 신부와 비슷한 점이 있다.
<헤어질 결심>에 대한 해외의 뜨거운 반응은 아름다운 영상미와 취조실에서의 신선한 화면구성, 그리고 해준과 서래가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 때문일 것이다. 또한 둘 간의 신체적인 접촉은 최소화한 대신에, 그들 간의 많은 대화가 더 많은 매력과 감동을 제공한 것 같다.
해준(박해일)은 단 한 번도 서래(탕웨이)에게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배려를 통해 그것을 느꼈고, 잘 이해했다. 특이한 사실은 때때로 그들이 번역기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장면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극의 분위기를 고양시켰다. 서래의 감정섞인 말투를 어떤 감정도 없는 남자의 목소리로 번역해 준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언어의 차이는 국제공동제작의 주요 문제점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여기서는 오히려 극 중 분위기와 배우의 감정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되었다.
서래가 본인의 감정이나 의사를 한국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 중국말로 먼저 표현하고, 번역기를 통해 전달하는 모습은 그녀의 감정 상태를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나와 배우 간에 일정 거리를 유지하게 하면서 감정 몰입을 방해했다.
여러 심리적 궁금증 유발하는 영화
감독의 의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헤어질 결심>은 많은 질문을 던진다. 장해준 형사는 왜 자신을 붕괴시키면서까지 송서래의 죄를 묻어 두었을까? “그녀의 몸이 꼿꼿해서” 서래가 좋다고 했는데, 여기서 몸이 꼿꼿하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 걸까? 평소 그녀의 당당함인가? (남편의 살인범으로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도 감정의 변화나 동요가 없었다) 자해한 상처를 주저없이 보여주는 모습 등이 그가 사랑한 꼿꼿함이었을까?
여성 관객으로서 서래(탕웨이)보다는 해준(박해일)의 심리가 더 궁금했다. 과연 사랑이 자신의 윤리관과 직업관을 송두리째 던질 만큼의 가치가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 이후로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본인이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저지르고 감당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서래가 다시 나타나자 혼란스러워한다. 또 살인사건이 나고, 다시 그녀를 의심하지만 휴대폰에서 그녀에게 불리한 정보가 나오자 관련 파일을 모두 지워버린다.
서래는 왜 해준이 좋았을까? 마침내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서? 자기가 피는 담배 냄새를 참아줄 줄 알아서? 예의가 발라서?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위해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던 그녀는 왜 다시 그 앞에 나타난 것일까? 그에게 다시 살인사건을 담당하게 하면서 그의 생기를 되찾아 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가 자신을 보지 못해 너무 힘들어하는 것이 안쓰러워 그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일까? 아니면 그가 보고 싶어 온 것일까? 아마도 이 모든 이유가 복합적이었으리라. 하지만 정작 그녀가 원했던 것은 자신의 사건이 미결로 남아, 그의 방에 자신의 사진이 걸려있어 계속해서 그가 자신을 보아주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이 영화에서 오랜만에 보는 얼굴(김신영, 박용우 등)들은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면서 극에 재미를 더했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 배우의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하지만, 신진 감독과 배우들의 선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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