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정택 칼럼니스트
전시 '그리고 빛', 6월 25일까지 서울 청담동 갤러리두
남여주 작가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갤러리두에서 지난 7일 시작한 <그리고 빛> 전시 의 특징을 ‘담는다’ 혹은 ‘담았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흐르는 물’을 매개로 수생 식물과 같은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은유된 도자기와 바리때기 같은 각종 그릇(花器)이 층층이 겹치는 형상과 내용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그릇에 자연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담는다’는 전통 정물화에서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정물화는 실내 테이블 위 세팅된 소품들과 더불어 화병에 담은 꽃이 연상된다.
폴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 1899년경>를 보면, 가운데 높은 곳에 놓인 그릇에 담긴 과일과 쏟아질 것 같은 접시의 사과들, 물병 주변의 과일들은 모두 바라본 시점이 다르다. 복잡한 문양의 소파, 주름진 흰 천 등은 화가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접시가 놓였으되 완전히 놓이지 않은 것처럼, 남여주는 담되 완전히 담지 않았다. 남여주가 주장하듯이 입구가 넓은 화병 안에 담긴 꽃들이 관객의 눈에도 담긴 것으로 보일까?
남여주 작품은 ‘물 선’이 매개이다. '물 선'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추어 반짝이는 잔물결, '윤슬'을 말하기도 한다.
작가는 깊은 산속 옹달샘 수면 아래 두레박을 내려 길어 올리듯이 풍부한 입체적 공간감을 상상하면서 회화적 터치로 펼쳐낸다.
담긴 사물들은 물을 드러낸다. 도자기는 매병(梅甁)과 주병(酒甁)으로 나뉜다. 주병은 목이 길고 매병은 아가리가 넓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달항아리도 매병에 속한다.
2007년경부터 형태를 달리하는 도자기와 그릇류가 소품으로 등장하는 물의 도식적 개념이었던 원형의 패턴(서클)은 '물 선'으로 상징화되었다. 색채의 중첩은 물속을 들여다본 은근히 비쳐지는 '투영(透映)'이기도 하다. 물의 깊이에서 생기는 빛의 굴절은 평면화 되었다.
남여주는 아크릴에 스와로브스키, 레진(resin), 비즈(beads)를 사용한다. 비즈는 빛의 거리와 위치에 따라 그림이 달리 보이게 한다. 표면상의 질감은 마치 자개를 세팅시키거나 건반 소리 공명을 최적화시키기 위한 피아노용 도장인 듯하다. 비즈 또한 흩뿌져진 게 아니라 화면 한쪽에 촘촘하게 촌락을 이루며 새로운 도상을 드러낸다.
작품들은 날이 저물며 비를 예고하는 습한 바람, 언덕에 올라서기 전 지나가는 한 무리의 까마귀 떼를 몰고 화폭 속에 풍경을 펼친다.
서양 회화에서 작품 자체인 이미지는 누구에게든 현재와 미래의 세상을 펼치며 과거를 떠올리는 도구이다. 남여주 작품의 이미지는 서양화의 개념 속에 머물지 않는다.
‘이미지는 동양회화에서는 형상(形象)이다. 동양회화에서 화(畫)란 겉으로 나타나는(外現) 형태를 조성하는 형(形)과 내재적 의미로서의 상(象)이 종합되어 드러나는 시각예술 형식이다. 형(shape)은 독립적으로는 인식 도구에 불과하지만 상(spiritual image)과 결합했을 때 비로서 형상(soul figure)으로서 회화에서 이미지의 속성을 부여받는다’ <동양회화에 있어서 형상관점의 심미-정진용>
남여주 작품에서 이미지는 물 또는 ‘물 선’으로 인해 중첩되어 있는듯 보인다. 건축가 황두진은 한옥을 ‘중첩된 기하학’(layered geometry)이라고 부른다. 기하학이 구조 및 재료와 결합하여 효과가 증폭되었다는 주장이다.
수족관의 투명한 유리 너머로 이러한 한옥 지붕이 물 속에 잠겨있다고 상상해 보라. 언덕이나 평지에 하늘을 이고 있어야 할 한옥이 기단과 서까래와 대들보가 사라지고 지붕만이 물에 잠겨있는 입면이 우리가 눈으로 본다고 가정해 보라.
남여주 작품은 서양 회화에서 재료를 달리해 ‘직접적 간섭에 따른 중첩’이 사라진, 수직과 수평이 교차한 직교좌표계(直交座標界)와 3차원 곡선으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에 작용하고 있는 자개장이 중심에 드러난다. 작품에서 자개 느낌이 난다는 평가를 받아들였다. 그 느낌은 어린 시절 경험한, 투명한 자개장에 자신이 비쳐졌을 때 깨끗한 물이 고요히 정지해 있는 상태(明鏡之水)를 말한다.
웬지 자개장과 호랑이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빨 드러내는 호랑이는 싫었다. 발과 부리가 매서운 맹조류도 싫어한다.
작가는 작품 전체적으로는 ‘흐르는 물’의 개념을 유지하되 매개인 그릇에 더 집중하였다. 물에 잠긴 그릇과 함께 쓰였던 주요 오브제인 ‘수생 식물’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시대의 풍경을 거창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언덕 후미진 곳에 자라는 은초롱꽃, 시멘트 포장길 틈새에 핀 접시꽃 등으로 표현한다. 잘 보여지지 않고 작고 미비하나 생명을 피우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작가의 손길을 받아 화려하게 크게 피어난다.
전시장에서 본 작품 그 자체이든, 전시장을 떠나 다른 일상의 곳에서도 남여주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이미지는 웬지 ‘동양적’이다.
이 ‘동양적’의 본질은 시점이다. 동양의 전통 화론에서, 서양의 투시원근법과 비교되는 삼원법은 자연경관(대상)을 정면에서,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와 뒷면까지 바라보는 3가지 시점을 말한다. 동양의 산수화가 환타지인 이유가 이런 다시점(多時點)을 한 화면에 구사, 서양 풍경화와 차별되는 미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남여주 작품 색의 화려함은 물을 매개로 한 형태의 해체와 같다.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원색의 강렬함은 탈색되어 한결 부드러워졌다.
‘동양적’의 또 다른 측면을 보자. 서구 사회에서 ‘동양적’은 오랫동안 ‘오리엔탈리즘’으로 불리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1935~2003)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1978)은 비서구사회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문제틀이다. 사이드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서구인들이 갖는 동양의 이미지가 편견과 왜곡에서 비롯된 허구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은 오리엔탈리즘과 상반된 이분법의 논리를 갖는다. 옥시덴탈리즘에 따르면 서양은 비인간적이고 물질적인 반면, 동양은 인간적이며 정신적이라는 것이다. 서양중심 주의의 오리엔탈리즘과 동양중심 주의의 옥시덴탈리즘은 자문화중심주의라는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셈이다.
동양에 속해있는 우리가 남여주 작품에서 느끼는 ‘동양적’이라는 것은 실은 옥시덴탈리즘이다.
작품에서의 ‘동양적’이라는 느낌은 이런 지배-종속의 제국주의 이론을 말하는건 아니다. 당연히 미학적 측면에서 언급되어져야 한다.
동양화는 그림이 세로로 길다. 사물 자체의 위용을 높이 사고자 함이다.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시점이다. 동양에서는 신문 기사도 세로로 쓰였다.
서양화가는 횡 위주의 캔버스를 사용한다. 대상이 중심이 아니라 주체인 나가 중심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이다. 전시장에서도 작품의 중심이 사람의 시점 아래에 놓여야 편하게 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서울의 미술대학 주관 사생대회에도 뽑혀나갔다. 그녀는 70년대 후반 경남 마산에 두 개 밖에 없는 화실중 한군데를 부친 몰래 다녀야 했다. 1980년대 초반 미술대학 진학을 반대하는 보수적인 부친과 타협, 서울의 여자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화풍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무의식에서부터 싹튼다. 남여주는 집 안 투명한 자개장에 물이 고체화되어 수직으로 벽에 붙어있는 거울(mirror)을 보는 듯했다. 거울(鏡)은 자신의 얼굴 생김새뿐 아니라 전체적인 삶의 모습까지도 읽어내는 듯 보였다. 그러한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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