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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카무플라주(camouflage)' 미학을 추구한다 - 이샛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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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택 칼럼니스트 

 

‘그린 아이즈’ 전시, 서울 서촌 '드로잉룸'에서 30일까지

이샛별 작가의 전시 ‘그린 아이즈’(Green Eyes) 오프닝을 하루 앞 둔 지난 6일, 서울 서촌 갤러리 <드로잉룸>을 찾았다.

<안개> 연작은 어떤 장소인지, 뒷모습을 보이는 인물은 누구인지 애매모호하다. 작품은 바탕색 위에 덧칠 하면서 동시에 지워나간 듯 하다. 대상 인물은 수풀 가운데서 길을 잃었지만 무언가를 찾는 듯도 하다. <안개> 연작은 이샛별 작가의 작업 주제이자 기법인 '카무플라주' 맥락 속에 녹아 있다. '카무플라주’(camouflage)'는 프랑스어로 '은폐' '위장'이라는 뜻이다.  

안개2 Acrylic on Paper 35.5*50츠 2022 / 사진 제공 = 이샛별 작가

<휴먼 그린휴> 연작(각 33.4* 24.2cm)은 소녀상이다. 얼굴이 뚜렷하지 않은 인물을 특징짓는 각양의 헤어 스타일, 이를 만지는 손이 대상이다. 인물은 작가 자신이 이입된 듯 하다. 

사람은 공간과 상호 작용을 하는 존재이다. 대상을 앞에 놓든, 상상을 하든 모델이 취한 자세는 작가의 경험이 들어간다. 이샛별의 인물화는 레이어(layer)가 없다. 이샛별은 여성의 긴 머리카락을 통해 모델의 특징을 규정짓는다. 

휴면 그린 휴 각 Oil on Canvas 33.4* 24.2cm 39개 / 사진 제공=이샛별 작가

<휴면 그린 휴>는 특정 도상(圖像)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공사장 대형 가림막, 미술관 벽면을 단일 이미지로만 가득 채운 작품 등이 연상되었다. 독립되었으나 패턴을 지닌 집합 작품은 각각 놓이는 위치에 따라 공공미술또는 설치작품이 된다. 

동일한 또는 유사한 이미지가 집합적으로 평면에 구성되면 공간과 어우러진 특유의 아우라가 나온다. 이샛별은 2001년 첫 전시 ‘위장’(disguise)에서 이미 13.8*22.7cm 짜리로 만든 90개 평면 설치 작품을 발표한 바 있다. 연필로 그린 소녀상 <슬퍼할 것이 없다>는 각 20.5* 27cm로 누구나 갖고 있을 과거의 어린 상처 입은 또 다른 나를 캐릭터화 했다.

이샛별 작가는 늦게 대학 입학 후 대학원까지 내리 마치고 첫 개인전 이래 결코 짧지 않은 20년 화업(畵業)의 여정을 걸어왔다. 이제 작가로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번 ‘그린 아이즈’전은 조형성보다는 주로 메시지에 치중해왔던 작업에 모멘텀이 될듯하다. 전시를 기획한 김희정 드로잉룸 대표는 국내 미대 회화과를 마치고 미국 뉴욕대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한 후 20여년간 국내외 미술 시장을 경험하고 2019년 갤러리를 열었다.

작품이 메시지가 강하다는 인식은 작품 자체에서도 나오지만 비평 글에서도 나온다. 평론가들은 디지털 화면으로 작품 이미지를 보고, 작가와의 소통은 전화로 하는 습성이 있다. 실물을 보지 않고 대면을 하지 않으면서 작가에게 <작가노트>를 요구한다. 훈련이 되지 않은 작가의 글은 자신이 창작한 이미지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문어체로 된 그 작가노트에 짜맞춤하는 미술비평 글 또한 갈 길을 잃는다.

밀리터리샵에서 바라본 세상의 풍경 

필자가 2014년 생애 첫 책을 집필하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경기도 동두천 지행을 언급하자 신흥 아파트 단지촌이 들어서면서 형성된 곳이라고 알려준다. 작가가 현재 사는 곳은 대전이지만 대학 졸업 후 서울 공릉과 의정부를 거쳐 동두천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

작가의 부친은 작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두천에서 강원도 화천으로 이사, 군장점(軍裝店, Military Shop) <제일사>를 경영했다. 부친은 재봉틀(미싱) 앞에 앉아 외출 나온 군인들의 얼룩무늬 군복(일명 개구리복) 위, 명찰에 이름을 새기고, 계급장도 다는 ‘오보로크’를 쳤다. 오보로크는 마름질한 옷감의 가장자리가 풀리지 않도록 실로 박음질하는 오버록(overlock)의 늘어진 일본식 발음이다.

얼룩무늬 군복은 위장성이 뛰어나다. 녹색의 삼림과 황색의 토양 등 국내 자연 지형의 색깔을 고려한 흑색, 녹색, 갈색, 모래색을 섞어 은폐·엄폐에 최적화시켜 디자인했다. 2010년대 들어 얼룩무늬는 디지털 군복으로 바뀌었고, 계급장 다는 방식도 탈부착식으로 바뀌었다. 디지털 군복은 흙색, 침엽수색, 수풀색, 나무줄기색, 목탄색 등 ‘디지털 5도색’을 하고 있다. 도형 디자인은 픽셀 방식을 적용한다. 군복은 적의 맨 눈과 감시 장비에 포착되지 않아야 한다.  

위장 disguise Acrylic on magazine 26*42cm 2001 / 사진제공 = 이샛별 작가

이샛별은 이 시절, 봄에는 녹색의 생나뭇가지들로 방탄모와 군복을 치장한 군인들의 대규모 이동 행렬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여름 대로의 가로수가 푸르를 때 먼 산은 짙은 녹색을 띤다. 접경 도시는 가을을 거쳐 겨울이면 황토색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잦은 눈발은 메마른 숲을 드러낼 뿐이었다.

친구들과 산에 놀러 가면 능선마다 침투호를 따라 참호가 파져 있었고, 중화기를 배치하던 곳은 위장그물들이 폐기되어 널려 있었다. 정기적으로 사주경계를 위해 숲을 쳐낸 산 아래에는 포대가 있었다.

이샛별은 중학생이던 1984년 부모와 떨어져 형제들과 같이 서울에서 유학 및 생활을 하였다. 가족들이 서울에서 모여 살게 된건 스무 살이 넘어서이다.  

이샛별은 스물 여섯에 대학 3학년으로 편입, 물감을 처음 만졌다. 대학원 시절 인물과 신체를 그리는 스승, 작가 안창홍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는다.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접경도시에 살며, 아버지가 군복에 박음질하는 소리를 듣고 자란 환경은 사물과 풍경, 사람을 대하면서 자연스럽게 독특한 내부자 시선 (from the native's point of view)을 형성한다. 성인이 되어 받은 미술 교육에 접맥이 되면서 점차 작가로서 작업 방향에 영향을 미친 듯 보인다. 

완성된 생산물 the final product dog Acrylic on magazine 44*120cm 2001

2001년 첫 개인전 타이틀은 <위장>(disguise)이었다. 여자와 아이를 주로 그렸으며, 사람 얼굴에 잎자루가 선명한 초록의 나뭇잎사귀가 중첩되기도 한다. 네 발 달린 짐승과 합성된 사람의 얼굴(‘완성된 생산물1,2’) 등의 작품이 눈에 띤다.

2004년 전시 <서커스 오! 서커스>에서는 주로 동시대 정치인 얼굴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2006년 전시 <봄날은 간다>에서 처음으로 계급장과 무궁화가 등장한다. 무궁화 도상은 군 간부 계급장(포제식과 철제식)에 붙는 받침으로 사용된다. 

봄날은 간다 Acrylic on digital print 각 40*4cm 2006 / 사진 제공 = 이샛별 작가

2008년 전시 <아래로부터의 봄>에서 사람 눈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2009년 전시 <더 리얼>은 그림에 처음으로 츄리닝 입은 사람이 등장한 후 주인공들은 종종 츄리닝 차림이 자연스럽다. 그림 속 얼굴 모습은 비교적 또렷하다. 

1970년대 홍콩계 미국인 영화배우 이소룡을 패러디한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가 감독을 맡은 ‘킬 빌’이다.  여성 주인공은 이소룡이 영화 ‘사망유희’에서 입었던 노란색 츄리닝을 입고 현란한 액션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 작가는 만화와 같은 아날로그 매체와 넷플릭스와 같은 디지털 영화 매체 양쪽에 두루 익숙하다.

주요 훈련이 끝나고 부대 대항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면, 부친의 군장 가게는 주황색 츄리닝에 이름표와 팀 마크 붙여달라는 단체 주문이 쏟아지기도 했다. 작가에게 츄리닝은 가상과 현실의 중간 지대를 상징하기도 한다. 

사각숲2 Oil on csnvas &nbsp;162.2&times;130.3cm 2022 디테일 부분샷

2013년 전시 <녹색 파국>의 작품들은, 동물, 사람, 미래 사회 등이 뒤얽히고 여러 장면이 중첩하며 서로 충돌해 작품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다. 폐공장에서 춤과 폭력이 동시에 분출되며, 눈부신 창 밖 너머에서 토끼 가면이 쏟아지는 살덩어리들을 바라본다. 생태 문제를 제시하였으나 메시지와 조형미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듯 보인다. 

2014년 전시, <인터페이스 풍경>의 작품들은 몽환적이고 언캐니한 숲 속 풍경의 묘사는 화자의 시선이 내재적임을 보여준다. 숲 속은 인간 삶의 공간 외부이나, 웬지 실내에서 보여지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화자의 눈 높이 또한 15도 정도 상향되어 있다. 

어른에 맞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비춰진 듯 하다. 이번 그린 아이즈 전시에 나온 작품 <사각숲>과 <사각숲2>는 한결 화자와 가까이에서 대상을 포착하고 있다. 2013년부터 현재 까지의 전체 흐름은 다분히 네오라우흐(Neo Rauch. 1960~ )와 로사 루이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이샛별 작가 또한 그들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밝히고 있다.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 네오 라우흐는 독일의 역사를 주제로 삼아  정치적인 알레고리 혹은 은유로 표현한다. 미스테리한 장면 묘사를 통해 뚜렷한 내러티브와 의도의 전달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특징을 지닌다. 

두 사람 외 ink on paper 29.7*29.7 2016 / 사진제공 = 이샛별 작가

2016년 <가장 욕망하는 드로잉>전에서 특징적인 작품들은 잉크 작업이다. 마치 두건을 쓴 듯한 등장 인물들은 얼굴이 없다. 1937년 9살 나이에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경험을 한 니콜라이신(신순남·니콜라이 세르게이예비치, 1928~2006년)이 세상을 떠난 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레퀴엠 연작 또한 그러하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예술가의 길은 지난하기만 하다. 사회적 메시지가 강하거나 소위 이쁘지 않은 그림은 상업 시장에서 밀려난다. 이샛별의 작품에는 이러한 작가 또는 생활인으로서 불안정한 심리 또한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2018년 전시, 남성의 얼굴을 대상으로 한 스키너 시리즈와 여성 얼굴을 대상으로 한 특이점 시리즈는 사람 얼굴에 표정 대신 넝쿨이 채우고 있다. ‘스키너’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리플리컨트(replicant, 복제 인간) 캐릭터에서 차용하였으며, 얼굴 안에 그려진 식물은 추상화된 표현이다. 

이샛별에게 카무플라주는 자연스럽다. 어릴적 군장 가게 공간에서부터 익힌 눈은 이차원 평면 회화에서도 본능적으로 작동한다.  

풍경의 층(Layerscape)

미술에서 중첩은 색이나 이미지가 겹치는걸 말한다. 공간과 시간을 은유적으로 표현, 대상의 본질에 대한 의미를 찾는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인내합니다.
귀의 통증이 시작되고 이따금 코피가 흐릅니다
심연 맨 아래에 있어요
아무것도 닿지 않는 어둠에서 발은 계속 달립니다.
<’층의 풍경’ 서문 중>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하이스미스 포’는 미국 범죄스릴러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와 에드거 알랜 포의 이름에서 차용하였다.

하이스미스의 의 소설 '심연'( Deep Water)은 독자들로 하여금 범죄적 상황 속에서 인간의 불안과 죄의식에 ‘기묘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2020년 코로나 감염이 시작된 초기 대구의 신천지 교회가 진원지로 지목되었다. 대구예술발전소 레지던시 입주 작가였던 이샛별은 3개월 동안 귀가 조치되기도 했다. 대재앙이 시작되면서 희생양, 마녀 사냥을 당하는듯 한 그들에게 느낀 묘한 공감이 무엇인가를 쫓았다.

사전적 의미의 ‘심연’은 내려 누르는 중력이 작용하는 곳이다. 서울의 1/6 크기인 프랑스 파리에는 정원식 공동묘지 페르라세즈 20개가 있다. 0.5평으로 한정한 개별 묘지는 2.5미터 정도로 깊게 파서 차례차례 관을 쌓는다. 건축적 중첩이다. 여기서 중첩은 미학적으로 카무플라주이다. 

인터페이스 풍경 Acrylic on Paper 410*282cm 2016 / 사진제공=이샛별 작가

이샛별의 작품들은 몽환적이고 애매모호하다. 작업은 웹 검색으로 이미지를 수집해 재배치하고 재구성 한다.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이미지 파편은 재조합되어 새로운 사건을 추동한다. 작가는 이를 ‘발명된 풍경’이라고 말한다. 

최근의 작품들은 화면 속 사람들의 눈이 제대로 그려진 게 없다. 작가는 ‘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해 자신이 없어서이다고 말한다

과도하게 가득 차 터질 것 같은 숲 그림은 자칫 곧 모든 게 허물어질 것 같은 경계에 와 있는 느낌이다. 이샛별의 ‘발명된 풍경’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1926~1984)가 말한, 비일상(非日常)·한시적 유토피아인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s)에서 너무 멀리 왔음을 암시한다.  

호주에서의 강과 호수가 어우러지는 원시림 경험, 유골이 어딘가에 묻혀있을 것 같은 제주도의 오름 숲과 4·3기간 7년 동안 집단학살 당한 민간인 흑백 사진들, 인터넷에서 발견한 이미지 등 다양한 숲을 조합하였고 모티프들을 가져왔다.

그녀의 주조색인 녹색은 성장 과정에서 부친의 군장 가게 <제일사>의 공간 구조와 생활 환경에서 온 듯 보인다. 실내에서 바라보는 바깥, 거리의 풍경은 환하다. 가게 문턱을 넘어 거리에서 바라본 상점은 초라하다. 

70년대생인 작가의 성장 시기는 국가의 모든 자원이 총동원된 개발연대 시기를 관통하고 있었으나, 접경 지역 도시들은 오랜 시간 개발이 제한되었다.   

이샛별의 ‘발명된 풍경’은 시간의 궤적을 타고 살아온 작가 내면의 풍경이다.   

‘그린 아이즈’(Green Eyes) 전시는 이달 30일까지이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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