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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미-중 반도체 전쟁', 한국은 어디 서있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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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반도체 전쟁', 한국은 어디 서있나? (상) < 이슈 < 기사본문 - 뉴스버스(Newsverse)

애틀랜타 이상연 기자(객원특파원)

10년전 중국의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선언이 도화선

미국, 반도체법으로 선전포고...한국, 일본과 함께 참전

전기차 1대에 과연 반도체 몇 개가 들어갈까?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지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일반 내연차량에는 1,400~1,500개, 테슬라 등 전기차에는 최대 3,000개의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1996년 개발된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Javelin)은 27년된 무기지만 여전히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오래된 미사일 1기에도 250개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반도체 부족 현상이 빚어지자 생활 전반은 물론 국가안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코로나19 비상사태가 마무리되자 미국은 소리 없는 전쟁을 시작했다. 상대 국가는 중국. 무기와 병력을 배치하는 전쟁이 아니라 '반도체'라는 고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첨단기술 경쟁이다. 미국은 우방국들을 설득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고, 중국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반도체 법안(CHIPS Act)을 제정하면서 본격적인 선전포고를 했지만 전쟁 위협은 중국이 먼저 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 2015년 '메이드 인 차이나 2025'라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10년 이내에 핵심 하이테크 산업의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저가 제조업 중심의 국가경제를 '대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글로벌 생산기지로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했지만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첨단 산업체계로의 전환 없이는 결국 쇠락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작용했다. 이에 따라 2025년까지 5G 통신과 로보틱스,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10개 첨단제품의 부품 70%를 국내에서 자체 생산한다는 선언이 나왔다. 

'2025년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반도체 생산량 증가가 최우선 순위였다. 전세계 반도체의 60%를 사용하면서도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13% 밖에 되지 않아 매년 2,000억달러 어치 이상의 반도체를 수입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2030년까지 전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50%를 자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청생산 기지 정도로 여겼던 중국이 첨단기술 추격을 선언하자 미국은 즉각적인 반격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화웨이를 필두로 5G 기술 개발을 방해하는 '기술 사다리 흔들기'부터 관세 폭탄으로 기존 제조업 기반을 뒤흔드는 '지상전'까지 펼쳤다. 

트럼프에 이어 집권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훨씬 더 지능적이고 집요한 방법으로 중국의 기술 개발을 지연시키고 '반도체 패권'을 지키는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의 배후에는 오바마 정권 시절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도와 '아시아 중심(Pivot to Asia)' 전략을 조율했던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있다. 

지난해 8월 제정된 반도체 법안의 핵심은 한마디로 '중국의 반도체 관련 기술 개발을 방해하고 중국내 반도체 생산을 최대한 견제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국가인 한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향후 5년간 2,80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내 반도체 생산과 연구개발에 사용하고, 이 가운데 520억달러는 한국기업인 삼성과 하이닉스 등 반도체 및 장비 제조업체에 보조금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사진=뉴스1)

반도체 법안을 통해 미국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파운드리 등 제조시설을 유치해 중국의 첨단 기술 개발을 저지하는 것이다. 한때 전세계 반도체 5개 가운데 2개를 만들었던 미국은 생산이 아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에 집중하면서 생산 점유율이 중국보다 낮은 12%로 떨어졌다. 퀄컴과 NVIDIA, 브로드컴 등 세계 팹리스 1~3위 기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반도체 부족 현상의 트라우마로 인해 결국 파운드리까지 유치해 일괄 생산공정을 갖춰야 안심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중국의 기술 개발 견제를 위해 미국은 물론 한국 등 우방국가의 대중국 기술수출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방법을 택했다. 반도체 법안을 통해 고성능 반도체 제조를 위한 장비나 기술은 아예 중국에 반입조차 못하게 규정했다. 특히 한국 기업들에게는 정부 보조금과 거미줄처럼 복잡한 미국시장 진입 장벽을 통해 사실상 중국과의 '절연'을 강요하는 상황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레버리지'를 갖고 있는 한국은 그렇지 않은 일본과 함께 참전해 미국 편에 서서 싸우고 있다. 미-중 반도체 전쟁은 기존의 군사안보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 지정학적 특수성이 있는 한국으로서는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경제·안보 분야에서 자칫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미·중 사이 샌드위치 입장인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한국의 '현명한 선택'에 대해선 다음 회에서 다룬다. 

이상연은 1994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특별취재부 사회부 경제부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2005년 미국 조지아대학교(UGA)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애틀랜타와 미주 한인 사회를 커버하는 애틀랜타 K 미디어 그룹을 설립해 현재 대표 기자로 재직 중이며, 뉴스버스 객원특파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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