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배상금 안 맡겠다"…법원, 제3자 변제금 공탁 거부 < 이슈 < 기사본문 - 뉴스버스(Newsverse)
김태현 기자
정부가 일본 기업을 대신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를 배상한다며 법원에 공탁을 냈으나 광주지법 공탁관이 ‘불수리’ 결정했다. 피해자 동의 없이 밀어부친 정부의 ‘제3자 변제’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다.
민법 규정상 채무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지만, 당사자의 의사 표시로 이를 허용하지 않을 때는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4일 광주지법에 따르면, 광주지법 공탁관은 전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본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을 대신해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씨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목적으로 낸 공탁 신청에 대해 ‘공탁 사유가 없다’며 불수리 결정했다.
공탁은 채무자가 채무를 갚으려고 하는데 채권자가 받기를 거부하거나 받을 수 없을 때 그 돈을 법원에 일단 맡기는 것이다. 공탁 신청이 접수되면 공탁관이 심사해 수리·불수리 여부를 결정한다. 통상 공탁은 형식적 요건이 충족되면 웬만하면 수리된다는 점에서 이번 불수리 결정은 이례적이다.
양씨와 다른 피해자인 이춘식씨, 故(고) 박해옥·정창화씨 유족은 지난 3월 재단에 일본 측의 사실인정과 사과가 없는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할 뜻이 없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광주지법 공탁관은 이를 민법 제469조1항의 단서가 규정하는 상황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법 제469조1항은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이를 허용하지 않는 때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단서가 붙어있다. 2항은 “이해관계 없는 제3자는 채무자 의사에 반해 변제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 측은 이 조항을 들어 “피해자 반대에도 불구하고 채무자인 일본 기업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인 정부가 배상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일본 정부가 불법적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점, 국가폭력에 대한 피해 배상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법원이 정부 공탁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정부는 공탁이 적법하다고 주장했지만 광주지법 공탁관은 피해자 측 손을 들어주었다.
피해자 측 이상갑 변호사는 “이번 불수리 결정은 재단이 제3자로서 변제할 자격이 없고 공탁도 할 수 없다는 의미”라며 “(이번 결정으로) 정부가 만든 제3자 변제안이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는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즉시 이의절차에 착수해 법원의 올바른 판단을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공탁 공무원이 형식상 요건을 완전히 갖춘 공탁 신청에 대해 제3자 변제 법리를 제시하며 불수리 결정한 것은 권한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향후 공탁관은 정부의 이의신청이 합당하다고 판단하면 수리하는 것으로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 정부의 이의신청이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광주지법으로 사건을 송부한다. 이후 광주지법 법관이 불수리 결정이 적절한지 따지게 된다. 광주지법 법관도 제3자 변제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정부는 또 불복해 항고할 수 있다.
법원이 공탁을 수리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측이 공탁 무효소송을 제기할 예정이어서 제3자 변제의 적법성을 둘러싼 공방이 법원에서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대리인단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윤석열 정부는 가해자의 배상 책임을 거꾸로 피해국이 뒤집어쓰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면서 역사 문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침해 문제를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며 “일본 정부와 가해 일본 피고 기업의 사실인정과 진정한 사죄만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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