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반도체 전쟁' (하)- 중국과 디리스킹, 정작 한국이 해야 < 이슈 < 기사본문 - 뉴스버스(Newsverse)
애틀란타 이상연기자
'반도체 전쟁' 선전포고 미국, 물밑에선 중국과 협상
미국 '디리스킹' 위해선 한국 등 우방국의 협조 필수
미국의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3박4일 일정의 중국 공식 방문에 나서 6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지난달 18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 이어 미국 장관급이 연이어 중국을 찾는 것이다.
옐런 장관은 중국 방문 과정에서 달러-위안 환율 문제와 관세,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을 피하는 이른바 '디리스킹' 등 미-중 양국 경제 현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분야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디커플링' 전략을 내세우며 사실상 중국에 선전포고를 했지만, 물밑에서는 협상의 손을 내밀며 '중국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옐런 장관은 지난달 연방 하원에 출석해 "중국과의 디커플링은 커다란 실수"라고 발언하는 등 중국과의 경제 협력 관계 유지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사실 미국 정부는 겉으로는 '디커플링'을 외치지만 중국을 완전 배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물밑 협상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지난해 발효된 미국 반도체법안(CHIPS Act)의 목적도 중국의 반도체 기술 개발을 완전히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 과정 자체를 지연시키는 '사다리 치우기' 전략으로 양국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특히 군사와 안보 분야의 전략 기술을 보호하고 관련 제품의 글로벌 공급망을 미국 위주로 재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어서 해당 분야의 '디리스킹'이 미국 정부의 최대 관심사일 수 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우방국에게 "미국과 중국 가운데 택일하라"는 압력을 넣으며 전쟁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막후에선 '적국'과 협상하며 실익을 챙기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등 우방국을 동원해 중국을 압박하는 것은 거꾸로 분석하면 미국이 자국의 힘만으로는 중국에 필요한 수준의 위협을 가할 수 없어서다.
지난달 27일 미국 워싱턴 DC의 초당파 싱크탱크인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주최로 열린 반도체 공급망 포럼에서 존 뉴퍼 미국반도체산업협회장은 "반도체 산업은 지난 수십년간 전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공급망을 촘촘히 구축했다"면서 "디커플링은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의 위험을 제거하는 디리스킹을 시도하고 있지만 디리스킹을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우방국에 더욱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한국의 적극적인 협력 없이는 미국의 반도체 전략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면 중국은 '디커플링'이나 '디리스킹' 모두 중국의 첨단 산업 발전에 막대한 위협을 가하는 개념이라며 적극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중국에 기술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미국의 전략에 한국 정부가 가담하지 말라는 경고도 함께 내놓고 있다. 미국 측에도 '주변국에 대한 기술통제 압박 중단'을 옐런 방문 전 선결과제의 하나로 던져놓은 상태다.
특히 중국은 미국 쪽에는 날선 모습을 보이면서도 프랑스와 영국 등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에게는 '통큰 선물'을 주며 동맹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미국 정부에는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미국 기업인들에게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정경 분리'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이 '칙사' 대접을 받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미래 국가경제를 결정지을 전쟁터에서 전략도, 전술도 없이 미국의 구호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일본과 달리 수출 위주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일본보다 더 중국에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도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독자적인 행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도의 '줄타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다.
이상연은 1994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특별취재부 사회부 경제부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2005년 미국 조지아대학교(UGA)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애틀랜타와 미주 한인 사회를 커버하는 애틀랜타 K 미디어 그룹을 설립해 현재 대표 기자로 재직 중이며, 뉴스버스 객원특파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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