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혁수 기자
김진욱 처장, 인원 탓했지만 실력과 책임감 부족이 원인
국정농단 사건 특검과 비교해보면, 공수처 실상 드러나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고발사주 사건 등 공수처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수사력 부재' 지적에 대해 인원 확충이 절실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 처장의 주장은 일리 있는 이야기지만,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수사 사례와 비교해보면 인원 부족만을 수사력 부재의 원인으로 꼽기는 어려워 보인다.
1. 깃털만 잡은 고발사주 수사
공수처는 지난 4일 내놓은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의 총선개입 사건, 일명 '고발사주'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수처가 이 사건 수사에 착수한 지난해 9월 9일 이후 약 8개월인 237일만이다.
이 사건은 21대 총선 직전인 2020년 4월 3일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으로 근무하던 손준성 검사가 김웅 국민의힘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을 통해 범여권 정치인과 기자들을 공직선거법 위반,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해달라는 고발장을 국민의힘에 전달한 사건이다. 공수처는 이 사건 수사 결과 손준성 검사를 공직선거법 위반,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김웅 의원에 대해서는 손 검사의 공범으로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이첩했다.
그러나 공수처는 고발사주의 윗선으로 의심받았던 윤석열 대통령(당시 검찰총장), 윤 대통령의 최측근 한동훈 법무부장관(당시 부산고검 차장) 등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공수처가 고발장 작성자 특정에 실패하면서 '지시자'를 수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발사주 사건은 지난해 9월 2일 뉴스버스의 단독 보도로 처음 알려졌고,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국을 강타했던 사건이다. 하지만 공수처는 '고발장 작성자'를 확인하지 못한 채 '깃털'만 뽑은 수사결과를 내놓으면서 '수사력 부재' 비판에 직면했다. 수사 과정에서도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한 영장을 3차례(체포영장 1회, 구속영장 2회) 기각 당하고, 통신조회 논란에 휩싸이는 등 경험 부족을 드러냈다.
2. 수사력 부재 인력부족 탓일까? 국정농단 특검과 비교해보니
김진욱 공수처장은 공수처에 제기된 수사력 부재의 원인을 '인력 부족'으로 돌렸다. 김 처장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수사 대상이 7,000명이 넘지만 검사는 23명 수준"이라며 "인력 부족 문제가 정말 심각한다"고 호소했다. 권력범죄를 수사하기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취지다.
공수처법은 검사 25명, 수사관 40명, 행정지원 인력 20명을 공수처 정원으로 두고 있다. 현재 공수처는 부장검사 두 자리가 여전히 공석인 가운데 수사관도 7명을 추가채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국정농단 특검팀'과 비교해 보면 투입된 인원의 수가 수사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국정농단 특검팀은 박영수 특별검사와 박충근·이용복·양재식·이규철 등 특검보 4명, 윤석열 수사팀장 등 20명의 파견검사, 파견공무원 40명, 특별수사관 31명 등 96명으로 구성됐다. 이에 통번역관 등 행정지원 인력 26명을 포함하면 총 122명 규모였다.
국정농단 특검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묵시적 청탁에 의한 대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부당지원 사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대형사건을 4개팀으로 나눠 종합적으로 수사했다. 사건이 가지는 의미와 별도로 사건의 수사 규모로 살펴보면 공수처 수사팀의 규모가 결코 국정농단 특검팀보다 부족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공수처는 경찰에서도 파견 인력을 지원받았다.
3. 시민단체 고발 기다린 공수처…수사 골든타임 스스로 걷어차
고발사주는 전형적인 권력범죄, 특히 법 기술자라고 할 수 있는 검사들이 조직적으로 개입된 사건이었던 만큼, 신속하고 기민한 수사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공수처는 작년 9월 2일 뉴스버스 보도 이후 수사에 착수하지 않다가, 시민단체의 고발장이 접수된 다음날인 9월 9일에서야 수사에 착수했다. 공수처가 스스로 수사의 골든타임을 걷어찬 셈이다.
공수처가 시민단체의 고발을 기다린 7일간 김웅 의원은 휴대전화를 교체했고, 수사정보정책관실 2담당관 산하에서 근무하던 임모 검사는 PC 하드디스크를 교체하고, 텔레그램·카카오톡 대화내역을 삭제했다.
이는 국정농단 사건 당시 검찰이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수사를 벌였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검찰은 초동수사 후 출범한 국정농단 특검팀에 수사자료 5만5,000쪽 가량을 제공했다.
수사 기간을 따져봐도 공수처가 237일 동안 수사한 것과 달리 국정농단 특검팀은 20일의 준비기간을 거쳐 70일 동안 공식 수사를 진행했다. 공수처가 손 검사를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된 것과 달리 국정농단 특검팀은 70일 수사 만에 비선실세로 불렸던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30명을 기소(구속기소 15명·불구속기소 15명)했다.
공수처가 부족했던 것은 '인력'도 있었지만, 결국 가장 부족했던 것은 '실력'과 '책임감'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공수처의 실력 부족에 대한 책임은 김진욱 공수처장이 온전히 져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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