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 정치평론가
한일관계 정상 조합의 법칙
김대중-오부치, 한일 국민들 최대한 납득시킬 수 있는 조합
노무현-고이즈미, 경제·문화 교류속 갈등리스크 영악한 관리
이명박-日 민주당, 개선 의지 불구 지지기반 약해 결과는 악화
박근혜-아베, 아베는 반한 억제, 박근혜는 반일정서에 취약
문재인-아베, 한일 타협에 최적 조합…기회 놓쳐
윤석열 대통령이 요즘 ‘김대중-오부치 선언(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거듭 언급하는 것을 들으면 실소가 나온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내용과 맥락이 최근 한일 대화와는 너무 다른 데다가,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김대중'과 '오부치'의 자리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교에서 타국과 타협하거나 투쟁할 때, ’그것을 누가 하느냐‘만큼 강력한 변수는 없다. 외교와 내치는 결이 이어져 있으며, 지도자의 결단과 대중의 여론은 불가분이기 때문이다. 한일관계에는 '정상 조합의 법칙'이 있다.
김대중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민주화운동가였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낸 대통령이기도 했다. 한일 타협은 민주화와 사회개혁에 실려 있었다. 김대중을 헐뜯던 사람들은 반일 논리를 동원했지만, 그들이 주로 모시는 박정희 등이야말로 친일 논란에 휩싸였기에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과거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일본에 강한 인상을 남긴 것도 자산이었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 자민당의 ’본류‘에 해당하는 정치인이었다. 강한 카리스마는 없었지만 사람들의 승복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었다. 한때 ‘식은 피자’ 같다고 비아냥 당했던 그는 총리에 취임한 이후 경제 회복에 성공하면서 ‘전자레인지 효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대중-오부치 조합은 한일 양국 국민을 최대한 납득시키는 게 가능했던 조합이었다.
그 다음 조합의 주체인 노무현-고이즈미의 경우 둘 다 ‘대중과의 직접 소통’을 통해 부상한 지도자였다. 이런 정치인들은 자칫 포퓰리즘 외교를 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둘은 한일관계를 영악하게 관리했다. 독도와 교과서 문제는 악화되었지만, 경제와 문화의 교류는 상당히 활발했다. 이 시기는 한류의 시대였고,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 포함되던 시점(2004년)도 바로 이때였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일본의 독도 도발이 이어지자 노무현 정부는 2006년 7월 5일 독도에 조사선을 보낸다. 그런데 한국 조사선은 독도 수역을 시속 10노트(18.52km)로 통과한다. 조사하는 배는 정박을 하거나 그보다 낮은 속도로 움직인다. ‘이 정도로 하고 물러간다’는 노 대통령의 신호였다. 고이즈미 정부는 당장은 불쾌함을 표시했지만 사태는 확대되지 않았다.
그 다음은 이명박-일본 민주당 조합. 양쪽 다 상대 국가에 잘해주려는 태도가 역력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무릎 꿇고 식민지배 과거사를 사과했다. 이명박 정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조합은 한일관계를 악화시켰다. 일본 민주당은 일본 사회에서 힘이 부족했고, 3년만에 자민당에게 도로 정권을 내줬다. 이명박 대통령은 친일 논란에 자주 시달리다 끝내 ‘독도를 방문한 유일한 대통령’이 되었다.
박근혜-아베는 국내 여론 관리에서 비대칭적이었다. 한국사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반일적인 이미지를 갖지 않았다. 그러나 임기 초중반 위안부 문제 해결을 강력 촉구하며 일본과 정면 대결을 불사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선 일본 사회의 반대가 많았고 특히 극우파는 결사적이었다. 아베 총리는 이들을 억제할 수 있는 정치인이었고, 그래서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가 가능했다.
하지만 그 다음 과정을 박근혜가 이겨내지 못했다. 반발 여론이 높았던 주요 요인 중 하나는 단순하게 말해 '박근혜가 했기'때문이다. 그는 국민 절반 이상에게 민주주의를 흔드는 사람으로 비쳐졌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막상 합의를 하니 그 이전 박근혜의 반일 행보는 잊혔고, 그는 이명박 이상의 친일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나중에 국민 4분의 3 이상이 그의 탄핵에 찬성하게 되자 한일 위안부 합의는 적폐로 꼽혔다. 아베-박근혜 조합은 결과적으로 일본 내 반한 운동은 억제했지만 한국의 반일 정서를 촉진했다.
그러고 보면 한일 타협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상 조합은 문재인-아베 조합이었다. 아베 총리가 일본 극우에 대한 통제력이 있었듯,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반일 여론을 가장 잘 누그러뜨릴 수 있는 정치인이었다. 어지간한 협상은 온건파(김대중-오부치 같은)가 해서 성과를 올리지만, 높고 결정적인 고비를 넘어서는 것은 강경파(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끼리의 협상이다. 트럼프-김정은의 2018년 싱가포르 회담이 그 대표적인 예다. 문재인과 아베는 좋은 기회를 놓친 셈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본인이 적임자로서 노력했다면 최악의 길(윤석열 정부의 해법)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윤석열-기시다 조합을 보자. 윤 대통령은 반일 정서를 해소할 수 있는 설득력이 없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사그라들던 반일 여론을 거꾸로 고취시키기 딱 좋은 대통령이다. 민주당의 죽창가와 문재인 정부의 무대책에 분개했던 시민들 상당수도 일본 피고기업의 사죄와 피해자 지원이 빠진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에 반대한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 지지층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이념적 친일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내며 반대 여론에 기름을 붓고, '대일 퍼주기'라는 인상만 굳혔다. 강제동원 문제가 윤 대통령 지지층을 약화시키고, 윤 대통령 지지율이 외교적 파워를 낮추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상대가 일본 민주당이기라도 했다. 박근혜-문재인 정부의 상대였던 아베 전 총리는 여당 의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구출한 북한 어부들을 즉시 북송할 정도의 강단이 있었다. 반면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일본 유력 정가의 중론을 조금도 거스를 수 없다. 지지율이 낮고, 그가 총리에 오른 것도 색깔이 연해서였으며, 개인 성격도 좋게 말해 온유하고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한 편이다. 윤석열 정부가 퍼주는 것을 넙죽넙죽 받기에는 적임이다. 윤석열-기시다 조합은 한국 국민 입장에서 보면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이 될 수도 있다.
김수민은 풀뿌리운동과 정당활동을 하다 현재는 지상파와 종편, 언론사 유튜브 방송 등에서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북 구미시의회 시의원을 지냈다. 시의원 시절엔 친박 세력과 싸웠고,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권 핵심 지지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다당제와 선거제도>(eBook)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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