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

‘날리면’파 더 우습게 만든 대통령실과 여권의 자충수

by 뉴스버스1 2022. 10. 4.
728x90

김수민 정치평론가 

 

대통령실이 ‘바이든' 대 '날리면’ 여론조사 역풍 초래

여당, 국민 60% 향해 “MBC에 속았다”고 삿대질 격

'가짜 방송' 몰아 尹지지율 올린들 반대편 냉소만 더 키워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믄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가 아니라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나”였다는 윤석열 대통령실의 주장은 두 갈래의 역풍을 초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 미국 캐나다 등 3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뒤 9월 26일 첫 출근길 문답회견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했다.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언론의 '비속어 발언' 보도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사진=뉴스1)

첫 번째는 ‘그럼 제대로 들어보자’고 팔 걷고 나선 누리꾼들의 '실제 음 찾기'작업이다. 음향 전문 유튜브 채널 방가TV는 음성 편집 프로그램 리퍼(Reaper)를 활용해서 소음을 줄이고 음성을 뚜렷하게 추출했다. (해당 유튜브

윤 대통령이 귀국한 뒤 도어스테핑에서 발음한 ‘바이든’과 문제의 발음을 교차해서 배열한 유튜버도 있었다. (해당 유튜브)

성원용 명예교수(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는 자신의 SNS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회에서 이 XX들이’라는 발언을 “아무리 해도 들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여러 언론이 이를 ‘음성인식 전문가’의 소견이라며 받아썼지만, 이미 유튜브등 인터넷에 올라온 갖가지 작업물을 본 사람이라면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다. 

그는 “MBC의 자막 조작을 이용한 세뇌 공작에 대통령실부터 넘어간 것”이라는 주장을 폈는데, 이를 겨냥한 듯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글은 의미심장하다. 이 전 대표는 이승만 정권 시절 사사오입 개헌 때 희한한 논리를 제공한 서울대 수학과 교수 이야기를 꺼내더니 “정치적으로 간단한 사안에 대해서 갑자기 학자의 권위가 등장하면 의심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자초한 두 번째 흐름은 여론조사다. 대통령실의 반박 이후 필자가 방송 출연에서 연이어 예견했던 그대로다.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럼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자”는 제안을 하기 마련이다. 두 차례의 여론조사가 실시되었다. KBC광주방송과 UPI뉴스가 여론조사전문기관 넥스트위크리서치에 의뢰해서 9월 26~27일 전국 1,000명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으로 들었다는 응답자는 61.2%였고, ‘날리면’으로 들은 응답자는 26.9%였다(100% 무선전화 ARS로 실시되었으며, 응답률 4.6%,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순방 시 '비속어 발언'을 두고 '바이든'으로 들리는지, '날리면'인지를 묻는 넥스트위크리서치 여론조사. (자료=넥스트위크리서치)

뉴스토마토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서 9월 26일~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바이든’ 58.9%, ‘날리면’ 29.0%로 나타났다(무선전화 ARS로 실시되었으며, 응답률 4.5%,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이상 여론조사들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날리면’으로 들린다는 사람은 열 명 중 세 명 꼴이 안 되며, ‘바이든’이라 들은 사람의 절반에 못 미친다. 

이 여론조사들이 끝나가거나 발표되던 시점에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최초 보도 언론인 MBC를 항의 방문해서 ‘자막 조작’을 규탄했다. 불확실하거나 애매한 발음인데도 MBC가 자막을 붙인 것은 ‘조작’이고, 이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바이든’이라 들리게 되었다고 우겼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바이든’이 들렸고, 여러 작업을 통해 그게 맞다고 확신을 굳힌 국민들은 많다. MBC 말고도 여러 언론이 ‘바이든’이라고 판단했다. 국민의힘은 이들 모두에게 “너희는 MBC에게 속았다”고 삿대질하고 나선 것과 다름 없다. 이렇게 가면 ‘언론이 자막 조작을 했다는 국민의힘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를 묻는 여론조사가 실시될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9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을 처음 보도한 MBC를 항의 방문했다가 MBC관계자들에게 저지되자, 출입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여권은 ‘날리면’이라고 들은 사람들을 거꾸로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만약 어떤 언론사가 문제의 윤 대통령 발언을 듣고 ‘이 대목이 잘 들리지 않으니 비보도하자(또는 자막에서 비워놓자)’고 결정했다고 치자. 이들이 “윤석열 정부를 위해 사실을 은폐했다(또는 모른체했다)”는 식의 비난을 받는다면 부당하다. 또 언론사 몇 군데가 묻어버리거나 몰아간다고 해서 모든 언론과 대중이 휩쓸리는 구조도 아니다. 그러나 여권이 한사코 ‘바이든’을 자막 조작의 결과로 몬다면, ‘날리면’이라 들리는 사람들이 되레 ‘윤석열 정부 지지자라서, 대통령실의 선동에 넘어간 것’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된다. 

‘오해입니다’라고 호소하는 수준을 넘어 ‘조작이다’라고 강변한 순간부터 여권은 강을 건넜다. 국민의힘은 3년 전 조국사태 때 민주당의 대응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본인들이 그러고 있다. 2019년 서초동 집회 군중이 ‘우리가 조국이다’를 외쳤다면, 2022년 국민의힘은 ‘(미국 국회가 아닌) 우리가 XX들이다’를 절규하고 있다. 지지 기반이 넉넉했던 민주당 정권도 정권 연장에 실패했다. 비추어보면 윤석열 정권의 결말은 빤하지 않은가.

설사 특정 언론이 정부 외교 성과를 폄훼하고 한미동맹에 흠집을 냈다고 믿는 사람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심리를 자극해 윤석열 정부 지지도가 상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열에 가담하지 않은 국민들의 냉소와 분노는 더 커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 지지도가 40%에 이르는 날이 온다고 치자. 그 사이 50% 넘는 국민들에게 윤석열 정권은 '절대 지지할 수 없는 정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김수민은 풀뿌리운동과 정당활동을 하다 현재는 지상파와 종편, 언론사 유튜브 방송 등에서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북 구미시의회 시의원을 지냈다. 시의원 시절엔 친박 세력과 싸웠고,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권 핵심 지지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다당제와 선거제도>(eBook) >가 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