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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尹 100일 회견, 입으론 '국민'이었지만 민심에 맞섰다

by 뉴스버스1 202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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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규 칼럼니스트 

 

지지율 20%대 '위기' 못느끼거나 무시하거나

곤란한 질문 뭉개고, 부인하고, 거짓말하고...

위기의 공개적 인정이 위기 해결의 첫 걸음

1. 尹 100일 회견, 자화자찬과 전 정부 때리기 뿐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한마디로 최악이다. 들머리의 발표는 시종일관 자화자찬과 전 정부 때리기뿐이었다. 뒤이은 질의응답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핵심적인 질문에 대부분 즉답을 피하거나 말을 돌렸다. 발표 모두에 '시작도 국민, 방향도 국민, 목표도 국민'이라 했지만 막상 국민들이 원하는 답은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약식 문답 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인사쇄신 필요성에 관한 질문에 “다 되돌아보면서 철저하게 챙기고 검증하겠다”고 했지만 “정치적 국면 전환이라든가 지지율 반등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해서는 안 된다”며 토를 달았다. 인사쇄신 의지가 크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실토한 셈이다. 

지지율 저하 관련 질문에는 "지지율 자체보다도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받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국민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지지율과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이 서로 다른 건가? 쓸데없는 말장난이고 자존심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는 “대통령으로서 민생 안전과 국민 안전에 매진을 하다 보니 다른 정치인들께서 어떤 정치적 발언을 하셨는지, 제대로 챙길 기회도 없었고...”라 답했다. 내부 총질하는 대표라 지칭하는 문자를 보낼 만큼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그냥 다른 정치인이 아니라 직전 여당 대표인데 '다른 정치인의 말'이라 뭉갠다고 한다. 누가 봐도 거짓말이다.  

2. 尹,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드러난 대통령의 문제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위기 인식과 국민을 향한 태도 문제’다. 

첫째, 위기인식의 문제다. 취임 초반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위기다. 이걸 '위기가 아니다'고 강변한들 진영에 눈 먼 소수의 장님들을 제외하면 믿어줄 사람들이 없다. 그런데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현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고 느낄만한 부분이 거의 없었다. 셋 중 하나다. 첫째, 대통령이 실제로 위기를 인식하지 못해서. 둘째, 위기임을 알지만 인정하지 않는 게 정치적으로 좋다고 판단해서. 셋째, 위기를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심각하지만, 자존심 또는 정치적 판단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대변동>에서 위기에 직면한 나라들이 어떤 선택과 어떤 변화를 통해 위기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났는지, 또는 실패했는지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국가의 바람직한 위기 대처 과정은 개인과 다르지 않다며, 상담 치료사들이 정립한 위기대처 방법 12단계를 소개한다. 첫 번째가 위기 상태의 인정, 두 번째가 개인의 책임을 수용하는 것, 세 번째가 해결해야할 문제를 규정하는 것, 네 번째가 타인과 지원단체의 정신적·물질적 지원 얻기, 다섯 번째가 문제 해결의 본보기로 삼을 사례 찾기 그리고 하나 건너뛰어 일곱 번째가 정직한 자기평가이다. 

위기의 인정은 혼자 속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위기를 인정하지 않으면 본인의 책임도 수용하지 않게 된다.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굳이 상대 진영에서 찾지 않아도 된다. 보수진영에도 윤여준 전 장관 등 정치 초보 대통령이 도움을 받을 고수들이 많다. 전임 대통령들의 사례에서, 나아가 외국 사례에서 위기대처를 잘한 좋은 본보기를 찾는 일, 정직하게 자신의 역량과 한계를 평가하는 일 등 위기 해결을 위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도 없다. 위기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위기해결을 위한 노력을 방기하는 것이 되고 만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3. 사과 빠지고 뻣뻣한 자세…공감능력 부족 탓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두 번째 문제는 태도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대선 때 득표율의 절반에 가까운 20%대로 떨어졌다는 것은 지금 다수 국민이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는 것에 화가 났고, 야단을 치고 있다는 뜻이다. 잘못해서 야단맞을 때는 일단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해야 한다. 이번 기자회견에는 직접적인 사과가 빠진 것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사과로 받아들일만한 성찰적 분위기가 없었다. 부모에게 꾸지람을 듣고 있는 어린아이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하고 소리 지르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사과와 미안이라는 말을 여섯 번이나 했다. 세 아들의 비리가 불거지면서 사나워진 민심 앞에 고개를 숙였다. 이명박 대통령도 본인 잘못이 컸지만 어쨌든 사과는 잘했다. 2008년 쇠고기 파동 당시 두 번의 대국민 사과를 했고, 세종시 수정안과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와 관련해, 그리고 2012년 이상득 등 측근 비리에 관해 사과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에 인색했다. 세월호의 죽음 앞에서도 사과의 말을 꺼내는 걸 힘들어했다. 

윤 대통령이 사과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이 또한 심각한 문제다. 인사참사, 실언, 배우자 문제 등 사과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토록 뻣뻣한 자세를 보이는 이유를 평생을 특수부 검사로 지내면서 형성된 ‘사안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은 언제나 정의의 편이었고, 욕먹을 일이 없었다. 도어스테핑을 하고, 소통을 강조하지만 소통의 전제인 역지사지하는 자세와 공감능력이 부족해 비판에 대한 답이 ‘문제인 정부 때도 그랬다’가 될 수밖에 없고, 앞으로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4. 민심에 맞서고 고집 피우고...'윤석열 문제' 고루 드러나 

대통령이 민심에 맞서고 고집을 피우면 힘들어 진다. 설혹 자기 생각이 옳다 여겨도 국민이 아니라고 하면 지는 흉내라도 내야한다. 아울러 지는 태도가 중요하다. '잘못했습니다. 국민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처럼 깔끔하게 인정하는 것이 시작이다. 토를 달거나 구질구질한 변명이 끼어들면 민심은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그랬다. 국민 대다수가 아니라고 하는 조국을 기필코 장관에 임명하는 고집을 부렸다. 더 나쁜 것은 그 다음이다. 민심에 밀려 결국 조기에 물러나게 하면서 '마음의 빚'이 있다 한 것이다. 국민들 화를 돋웠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부상한 데는 시원시원한 어법과 태도가 한 몫 했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검찰총장 시절 국회에 출석해 당시 여당 의원들의 공세에도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모든 사안에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과거의 윤석열이라면 이번 기자회견에서 군더더기 걷어내고 '지지율로 나타난 국민의 꾸지람을 겸허하게 받들어 국정과 인사를 쇄신하겠습니다'라고 담백하게 답변했을 것 같다. 

이번에는 달랐다. 뻔한 질문을 뭉개고, 사실을 부인하고, 거짓말했다. 과거의 윤석열이 연출이고 현재의 윤석열이 본질인지, 본래 자신을 잃어버리고 나빠진 건지, 이번 기자회견이 잘못 연출된 건지 그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그 어느 것이든 이번 기자회견에 윤 대통령의 문제가 고루 담겨있다.

윤석규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YMCA 경실련 등에 몸담아오다 DJ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국장을 지냈다. 2002년 노무현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아 노무현 대선 전략의 밑그림을 그린 ‘정치전략통’이다. SNS 등에서 합리적 진보 논객으로 활동 중인 그는 날카로운 정치 분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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