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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눈물의 정치미학'…독설 정치인의 '말하면서 울기' 추하다

by 뉴스버스1 2022.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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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정치평론가

 

정치 거목, 타인의 아픔을 나눌 때 눈물…자신의 상처엔 의연

이준석, 이대녀· 전장연엔 독설하고, 尹 '이 새끼'엔 상처 받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8월 13일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린 것을 보며 ‘정치인 눈물의 법칙’을 되새겨본다.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여러 번 눈물을 흘렸을 때, 필자는  출연 방송들에서 “노무현은 들으면서 울었지만, 이재명은 말하면서 운다”고 지적했다. 대선 CF로 쓰이기도 했던 ‘노무현의 눈물’은 2002년 10월 개혁국민정당 발기인 대회에서 배우 문성근의 지지 연설을 듣다 나온 것이다. 반면 대선 당시의 이재명 의원은 자신의 아픔이나 겁에 대해 말하면서 울었다. 이번 이 대표의 눈물도 이쪽 부류다. 

20대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월 24일 경기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시장을 찾아 즉석연설을 하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뉴스1)

정치 거목들, 자신의 아픔·상처엔 의연함으로 지지자 울려

정치의 미학이 땅에 떨어지다 못해 지하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난 대선부터 돌아보면, 이재명 의원이 울다 나온 말로는“제가 (대선에서) 지면, (윤석열 정권이) 없는 죄 만들어서 (제가) 감옥갈 것 같습니다”도 있다. 1971년 독재 정권 시절 박정희 대통령과 맞서 싸운 김대중 후보는 자신이 입을 피해를 상기시키며 울면서 호소하지 않았다. 실소를 자아낸것은 윤석열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민주당이 당선되면 “자유 대한민국이 사라진다”고 했다. 박정희가 또 집권하면 '영구집권의 총통 시대가 온다'고 경고했던 김대중을 따라한 것인가? 지금이 1971년인가? 

김대중은 납치와 연금, 망명과 정치 금지에 묶여 16년 세월을 보내고 1987년 9월 8일 광주 망월동 묘역을 방문해 5.18 영령 앞에서 통곡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엉엉 울던 장면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그러나1992년 12월, “국민 여러분의 하해 같은 은혜를 하나도 갚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 점 가슴 아프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라며 정계은퇴를 선언하던 자리에서는, 당직자들의 눈물바다를 뒤로 하면서도 울지 않았다. 대중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 정치인은 타인으로 인해 울거나, 의연한 모습으로 사람을 울린다. 

‘말하면서 울기’가 특히 추해보이는 정치인 부류가 있다. 냉소와 독설, 비난, 야유를 입에 달고 살아온 정치인이다. 그런 말이 그 자체로 그릇된 것은 아니다. 그걸 잘하는 재주는 정치판에서 좋게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정치인이 자신의 피해의식으로 도망친다면 ‘내로남불’의 결정판, ‘내내로 남남불(내 내로남불은 로맨스지만 남의 내로남불은 불륜)’이라 할 수 있다. 이준석 대표는 “20대 여성은 어젠다 형성에 뒤처져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는 비문명적” 같은 발언을 예사로 해왔다. 남에게 비수를 꽂고 살아왔으면 자신에게 꽂힌 비수는 가볍게 털 줄도 알아야 한다. 만약 남에게 비수를 꽂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꽂힌 것도 비수가 되기엔 약하다고 여겨야 마땅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 도중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스1)

'이 새끼 저 새끼' 발언 윤 대통령 잘못이지만, 당 대표 이준석 울 일 아니다

이준석 대표 기자회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대목이다. “대통령 선거 과정 내내 한쪽으로는 저에 대해서‘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당대표로서 열심히 뛰어야 했던 제 쓰린 마음이 여러분이 입으로 말하는 '선당후사'보다 훨씬 아린 선당후사였다.” 

면전에서 ‘이 새끼 저 새끼’를 들은 것은 아닌 모양인데, 물론 기분 나쁜 일이고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나 서러운 일인가? 윤 대통령은 자신이 그렇게도 무시한 이 대표와 왜 연거푸 화해하고 갈등을 봉합했을까. 시기적으로는 선거가 코앞이고 상대가 당 대표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회적 갈등을 부채질해도 언론이 받아적는 것 또한 그가 당 대표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운이 좋았다. 그가 말하는 ‘공정한 경쟁’이 우습게 들릴 뿐이다. 

그의 기자회견은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윤핵관 욕을 실컷 하면서도 별안간 험지 출마를 주문한다. 바로잡겠다는 건가, 타도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인정받으려고 위력 시위를 하는 건가. 물론 어떤 경우든 자신이 잘 사는 데 목적이 있음은 알겠다. 욕망은 강한데 방향을 잡지 못할 때, 나르시시즘은 날 것으로 드러난다. 그 ‘눈물’도 과신과 자기 연민의 결정체다. 

이준석 대표에게 지금의 곤경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3.9 대선 직후 대표직에서 사퇴하는 것이었다. “대선에서 이겨 다행이지만, 제 자신의 부족함이 많이 드러난 선거이기도 했습니다.” 이 대표는 2030 남성 득표를 상쇄하는 2030 여성의 역결집과 “10%포인트차로 이긴다”는 장담으로 자신에게 치명타를 먹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준석측은 “내가 1등공신인데 내가 사퇴하면 다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나올 것이다. 이래서 이준석이 더 크게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박근혜, 윤석열이 비정상이고 우리는 정상’이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두 번이나 양두구육했으면 본인부터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 

이 대표에게 남은 단 하나의 무기는 그보다 위상이 더 높은 정치인들도 미적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이다. 높은 정권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신승을 했고, 여소야대에 지지율까지 낮은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이것 저것 마구잡이로 밀어붙인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에게 당하는 듯한 모습 때문에 대선 주자로 올라섰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이재명 의원은 국민의힘에게 정권을 내준 주역이었다는 자기 반성 없이, 대선 때 얻은 1,600여만표가 온전히 자기 것인 양 기세등등하다. 이 셋 중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보다 나은 게 자랑인가. 팬덤은 그 정치인의 뭘 보고 그리 목소리를 높이는지, 그냥 딱할 뿐이다. 

김수민은 풀뿌리운동과 정당활동을 하다 현재는 지상파와 종편, 언론사 유튜브 방송 등에서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북 구미시의회 시의원을 지냈다. 시의원 시절엔 친박 세력과 싸웠고,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권 핵심 지지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다당제와 선거제도>(eBook)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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