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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내러티브 회화는 공간을 지배한다 - 서상익 작가

by 뉴스버스1 2023.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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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택 칼럼니스트 

 

개인전 '하이 앤 드라이(High and Dry)' 퍼플갤러리에서 4월 14~5월 20일

2008년 첫 개인전 〈녹아내리는 오후〉에 출품한 ‘Sunday PM 4:00’는, 일요일 오후 작가 자신이 사는 대학가 좁은 자취방 침대에 사자가 드러누워 느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상상을 넘나드는 작품들로 채워진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완판되었다.

Sunday PM 4:00 oil on canvas 130.3×162.2cm, 2007

2010년 2회 개인전 <서커스, Circus〉에 나온 ‘길들여지지 않기’에서, 빈 캔버스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미술관의 관람객 앞에 펠트천을 물고가는 코요테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1974년 사흘간에 걸친 퍼포먼스 〈나는 미국을 좋아하고, 미국도 나를 좋아한다, I Like America and America likes me〉에서 따온 도상이다. 코요테는 아시아에서 베링 해협을 건너 북미대륙에 도착한 첫 이주자로서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상징한다.

길들여지지 않기 oil on canvas 145.5×112.1cm  2009

지난 20일 만난 서상익 작가에게 필자와의 인터뷰(2021년 7월 9일 ‘시간적 존재 인물, 공간을 탐미하다’ ) 이후 2년여 동안 무엇이 가장 큰 변화였는지를 물었다. 지난해 경기도 남양주시의 사설 레지던시(창작 스튜디오) 입주를 첫번째로 꼽았다.

2년전 그의 전시장에서 이렇게 물었다. “‘무엇을 그린 것인가? 풍경, 공간, 사람들, 아니면 순간적인 사람들의 표정?” 그가 답했다. "풍경이 어떻게 공간이 되고, 사람들이 공간에서 연출하는 연극적 가능성을 보고자 내러티브(narrative·이야기)가 강한 상징적인 사람, 동물을 등장시킨다."

필자는, “(서상익) 작가의 핵심적인 역할은 (화면 속)실제 장소이면서도 시간을 초월하는 공간을 선택해내는 것이다”고 썼다. 

레지던시의 천장 높은 큰 작업실에 들어오니 화면(화폭)을 바라보는 시각이 커졌다고 한다. 지금을 숫자 100으로 보면 그 이전은 60이다. 좀 더 일찍 큰 공간에서 작업했어야 했다고 말한다.

서상익은 작품이 되어가는 과정, 캔버스의 화폭 속 세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캔버스 바깥의 현실 세계,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동안 혼자 작업해 왔으나 창작 스튜디오에 입주해 동료 작가들과 부딪히고 공유하는 경험이 즐겁다고 말한다. 스튜디오와 가까운 양평군 서종면의 북한강가에서 놀고, 휴게실에서 커피 같이 마시는 어찌보면 단순한 경험들이 좋다고 한다. 

대학 강의를 그만두었다는 점도 의미있는 변화로 꼽는다. 서른 한 살 때 부터 확신에 차서 강의를 해왔으나 최근에는 점점 ‘미술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로 생각이 귀결되었는데 그만두길 잘했다고 한다.

'페기의 초상들', 오른쪽에 150호 크기 페기 초상 위치. 각 53×45cm oil on canvas 2022

그는 최근 프리미엄 커피숍 브랜드 테라로사의 제주 중문점 전시 공간에 페기 구겐하임(PeggyGuggenheim, 1898~1979)과 관련된 작가들을 그린 ‘페기의 초상들’을 걸었다. 페기 구겐하임은 2차 대전 전후로 유럽의 초현실주의와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 인물이다. 오늘날 미국 뉴욕을 비롯한 구겐하임 미술관의 글로벌 네트워크의 근간이 되는 컬렉션을 만들었다.   

새삼스럽게 거장들의 얼굴과 작품을 한 화면에 배치하는 방식의 초상화 작업이 눈에 들어왔다. 서상익 작가의 작품 세계 맥락을 잘 모르는 이들은 엉뚱하고 생경하다고 볼수도 있다.  

컬렉터이며 테라로사의 CEO 김용덕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구겐하임 미술관(Peggy Guggenheim Collection)에서 설립자 페기 구겐하임과 작가들 관계에서 영감을 받았다. ‘페기의 초상들’ 작업은 김용덕과 함께 컨셉을 잡아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페기 구겐하임의 미술사의 위치나 대형 컬렉터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았다. 당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새로운 여성상의 등장이라는 점에 관심을 두었다. 페기는 물려받은 유산으로 금융업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미술 투자에 나섰고, 수많은 작가들과 스캔들을 일으키고, 잭슨 폴락 등 작가를 발굴하고 키워내기도 한 적극적이고 당당한 여성으로서의 모습이었다. 

페기의 초상은 크기를 150호(227·181cm)로 크게 하고 작가들은 10호(53·45cm)의 군상들로 제작해 수많은 남성들을 거느린 팜므파탈적인 여인으로 그리고자 했다.

 

2015년,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 프랜시스 베이컨,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작가들을 오마주한 작품 80여점으로 ‘화가의 성전’을 타이틀로 개인전을 가졌다.

특유의 생동감 있는 인물 묘사, 배경이 되는 차가운 풍경, 이차원 평면을 3차원으로 해석하는 구도및 대상들의 배치를 특징으로 하는 전시는 2013년 <익숙한 풍경>, 2015년 <모노드라마>로 계속 이어나갔다.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예술이 어디에서 어떻게 유래하는지 보면서 예술작품이 갖는 ‘사물성’에 대한 오래된 통념들을 살폈다. 

예술작품의 근원은, 진리를 작품을 통해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진리란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앎의 일치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사물의 어둠과 밝음, 나아가고 물러서는, 드러나고 숨는 생동을 말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페기의초상들- 잭슨 폴락, 53×45cm oil on canvas 2022

서상익의 드러나고 숨은 생동감 가득한 화면 구성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들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드는 이유는 거장들을 자신의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현실의 단면 속에서 초현실적인 순간을 들춰내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듯 긴장감이 감도는 그의 작품들은 영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서상익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당시 ‘첩혈쌍웅’, ‘천장지구’, ‘영웅본색’ 같은 홍콩 느와르와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감독의 ‘저수지의 개들’, ‘펄프픽션’ 등 초기작을 좋아했다. 영화의 기저를 이루는 차가운 톤이 자신의 작업에도 깊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전통이나 정통의 극복은 전통이나 정통에 대해 정통해야 가능하다. ‘그림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끊임없이 찾는 방법으로 원칙에 충실한 작업 방식을 고수한다.   

그의 주제나 소재는 달라진게 없다. 그리는 방식이 자유로워졌다. 서상익은 10여년 전 서울 평창동에서의 레지던시 기간을 포함, 자신에게 맞는 표현 방식이 있을 것이다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예전 작업 스타일은, 밀도감은 좋았으나 한 방향으로 몰아치는 경향이 드러나 단조로운 풍을 띠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너무 여유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작업이 재미있어졌고 작업 과정이 자유롭게 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고 말한다. 작업 과정에서 작품하고 호흡한다는 느낌을 갖는다. 서상익은 여전히 이차원 평면에서 벌이는 회화 작업이 답답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부조, 조각 등 차원을 달리하는 장르의 확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주어진 이차원 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는가를 늘 고민한다. 

대상도 최근의 사람 중심에서 벗어나 풍경, 동물 등 다양화해질듯 하다고 말한다. 그는 4월 14일부터 5월 20일까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퍼플 갤러리에서 <High and Dry>를 타이틀로 개인전을 갖는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5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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