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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멸을 향한 존재들의 적요한 운명을 사진에 담다-조현택

by 뉴스버스1 202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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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택 칼럼니스트 

 

조현택 개인전 '집과 벽', 경기 수원시 예술공간 '아름'에서 28일까지

2021년 4월 제13회 광주비엔날레 1전시실에서 2전시실로 이동하는 통로엔 절이나 성당에서 볼 법한 불상과 성모마리아상이 가지런히 놓인 작품이 전시되었다. 

스톤마켓 웅천2 150×450cm Pigment Print 2020 / 사진제공 =조현택 작가

부처님과 성모마리아가 한데 모인 현장은 돌로 만든 조각상을 파는 석재상이다.  사진작가 조현택은 ‘스톤 마켓’(stone market)에 주목했다. 사찰이나 성당에 놓이기 전의 조각상 또는 조각공예품인 사물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제조 공장도 겸하는 판매상의 그 석조상 앞에 음료수와 과일을 놓았고, 손을 모으고 절을 하는 광경도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채석장과 가까운 도시 외곽에 위치한 석재상, 석재조형물 회사들은 미륵상과 같은 불교 석상, 무속의 조각상을 제작하고 판매한다. 공동묘지, 납골당, 천주교 묘지 앞 석재상은 묘석이나 묘비 등을 취급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는 카톡 방에서 정치와 더불어 종교를 금기어로 정한 곳이 많다. 종교의 근본주의가 빚어낸 불편함 때문이다. 기독교는 성물(聖物)을 우상으로 보기에 배제한다. 민 십자가 하나면 충분하기에 석재상에는 기독교 조형물은 제한적이다.

석재상이 위치한 장소적인 특징은 독특한 아우라를 만든다. 전북 익산의 ‘황등석’으로 불리는 화강암은 황등면, 낭산면, 함열면 등에 분포되어 있다. 황등석은 균등한 색을 가지고 철분 함유량이 적어 산화 기간이 길다. 밝은 회백색을 띠며, 비에 젖으면 은은한 쑥색이 된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 11호), 왕궁리 5층 석탑(국보 289호)도 황등석으로 만들었으며, 미륵사지 석탑 복원에도 황등석이 사용되었다

조현택은 익산을 비롯 비석에 쓰이는 오석(烏石)으로 유명한 ‘보령석’ 산지인 충남 보령, 건축 자재의 최고로 평가받는 ‘포천석’ 산지인 경기도 포천 등에 산재한 석재조형물 공장을 찾아 촬영했다.

스톤마켓 포천150×580 cm Pigment Print 2020 / 사진제공 =조현택 작가

사물이 놓인 장소의 아우라는 석재상의 규모나 조형물 크기에서 오지 않는다. 어느 곳의 석재상이든 상품으로서 조형물의 구색을 갖춘다. 불상은 어디서나 보인다. 한반도의 오랜 불교적 전통은 지역의 산업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그는 작품의 대상인 이러한 장소 정보 로드맵을 만들었다. 

석재조형물 회사들은 많은 공정을 여전히 수작업으로 하고 있으나 대형 원석을 떼어내고, 갈아내고, 다듬는 가공 공정에 사용하는 크레인과 전동공구도 대상에 포함시켰다.     

지난 6일 개장한 서울의 광화문 광장에는 ‘열린마당’이 조성됐다. 바닥에는 전국에서 가져온 8종의 돌로 조각보 문양으로 팔도석 포장 구간을 조성했다. 고흥석(전남 고흥), 상주석(경북 상주), 거창석(경남 거창), 익산석(전북 익산), 가평석(경기도 가평), 운천석(경기도 포천), 보성석(전남 보성), 포천석(경기도 포천)을 사용했다. 석재 산지 인근에는 조현택이 작품의 모델로 삼은 석재상들이 있다.

그는 이러한 장소를 한 밤중에 촬영한다. 관객은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종종 보는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사진 작품으로 대할 때는, 수많은 돌 조각들이 생경하고 그로테스크하며 기이한 느낌을 받는다.

조현택은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자동 카메라로 전남 나주 동네를 다니며 사진을 찍으며 흥미를 가졌다. 인근 도시 광주의 사진학원을 다니며 접한 소위 ‘작품 사진’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고교를 졸업하고 2년동안 대학입시를 위해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창작의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에서는 유학파 출신의 강사를 통해 동시대 미술과 사진의 위상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 2007년에서 2009년 작업한 작품들로 졸업 전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를 가졌다.

작가 공모 포트폴리오를 제출, 갤러리들로부터 전시 지원 작가로 선정돼 2009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관람객이 찾지 않는 전시장을 지키며 ‘이게 작가인가?’라는 회의가 들곤 했다.

사진 매체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미래를 본다면 순수 미술이나 철학을 하고픈 갈증도 있었으나 반복적인 작업 패턴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사진 매체 예술가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굳히게 되었다.

옥상소변 80×120cm inkjet print 2012 / 사진 제공 = 조현택 작가

자신의 얘기를 진정성 있게 말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젊은이의 양지>(2011-2012) 전시를 가졌다. 소위 88세대에 속하는 지나가 버릴 ‘젊은 날의 초상’을 얘기하고 싶었다. 1995년, KBS는 동명의 드라마를 상영하였다. 1980년대 후반, 광산촌을 배경으로 한 세 젊은이의 사랑과 야망을 그린 드라마가 작가에게 깊이 각인되었나 보다.

작가가 청소년기를 보낸 도시와 농촌의 어중간한 시간과 공간을 오간 체험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작가 고유의 창작의 불씨가 된듯하다. 

조현택이 작품을 통해 드러내놓길 꺼려하는 그러나 언젠가는 말해야만 했던 청년의 초입, 그 시간의 빈터 속으로 관객은 들어갈 수 있다.

세 친구 잉어소년 59.6×76cm C print 2008 / 사진제공 = 조현택 작가
 

2012년 제9회 광주비엔날레 본 전시 참여작가로 선정되어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시리즈를 선보였다. 2016년에도 광주비엔날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았다. 

조현택은 자기만의 고유한 예술 언어를 어떻게 구사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자전적 스토리 전개 작업 방식에서 탈피하기로 했다. 사회이슈의 흐름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왔다. 
매체에 대한 실험과 의구심에서 시작된 게 <빈 방> 시리즈이다. 다른 작가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작업할 바에는 무엇하러 하느냐는 생각이 동인이 되었다.

<빈 방> 시리즈는 어두운 빈방을 거대한 카메라 옵스큐라로 만들어 방안에 비친 영상을 포착해 낸 작업이다. <빈 방> 시리즈는 도시 재생 과정에서 철거가 예정된 집의 빈방에 들어가 벽이나 지붕에 구멍을 내고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따라 그 맞은편 마당 풍경이 상하좌우가 전도된 상태로 벽에 비친 영상을 촬영한 작업들이다.

55번방 광주시 광산구 덕림동 699-7 100×150cm inkjet print 2015 / 사진제공=조현택 작가

카메라 옵스큐라는 라틴어 ‘camera obscura’에서 유래한다. 어두운 방’이라는 뜻으로, 카메라의 어원을 나타낸다. 밀폐된 방의 한쪽 벽에 구멍을 뚫으면 바깥 경치가 다른 쪽 벽 위에 거꾸로 비치는데 16세기 이전부터 이 원리가 알려졌다.

주인이 떠난 뒤 시간이 멈춘 먹먹한 공간에, 그들이 같이 살던 이들과 호흡하였던 마당의 풍경을 끌어들여와 가장 사진적인 사진을 찍자는 결심이 섰다.   

조현택은 실제와 환영이 공존하는 빈방의 아우라와 소멸되는 시간을 필름에 누적시켰다.

3번방 나주시 중앙동 114-2 100×76cm inkjet print 2015 / 사진제공 = 조현택 작가

“그의 사진은 파괴되고 소멸될 공간을 풍화되지 않을 기억으로 보존하면서 지상의 사라져가는 존재에 대한 애도의 정을 더욱 인상적이고 개성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사진가·비평가 김혜원>

<빈 방>이후 그의 작업은 급물살을 탔다. 막상 전시를 준비하면서 보니 작업량이 너무도 부족했다. 시리즈마다 100개씩하자고 마음 먹었다. 

“마당의 풍경을 들여와 마지막일지 모를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다. 빛을 차단한 어두운 빈방을 ‘카메라 옵스큐라’ 삼아 촬영을 하면서 마치 거대한 카메라 안에 내가 들어왔고, 어둠 속에서 서서히 상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면 필름을 현상하는 암실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작가 노트>

56번방 함평군 월야면 백야리 511 150×100cm inkjet print 2015

작가가 작품의 내면에 들어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내적 필연성 때문이다. 작가는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취한 채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개입해 들어가 그 의미를 반추하고 풍경을 들여온 그 곳에서 왜 자신이 머물러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는 작가의 머릿속에서 완료된 상태로 있다가 눈이 카메라 앵글로 이동하는 게 아니다. 작가는 사위어가는 노을처럼 소멸을 향하는 존재들의 슬프고도 적요한 운명을 형상화하였다. 시간의 심연 속으로의 여행인 동시에 들끓는 감정을 냉각된 시선으로 옮겨놓는 작업이기도 하다. 

빈 방을 포용한 집은 죽은 대상이다. 그러한 대상 앞에 선 작가 자신은 마치 주인 잃은 사냥개와도 같은 침입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성의 날 것 그대로를 담고 싶었다. 그 공간과 시간을 살다간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조현택은 2016년 개인전부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계속된, 거주지를 옮기고 환경이 달라지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는 주변의 작가들로 인해 매체적인 확장이 가능했다.

드라마세트 카메라 옵스큐라 #5 87×130cm inkjet print 2017

드라마 세트장은 처음부터 용도가 가짜 집이다. 쵤영이 끝난 세트장을 찾는 이들은 자유롭다. 서울 광화문 인근 경복궁 무료 입장을 위한 한복을 걸친 입장객들은 연출하듯이 돌아다니지 않나. 세트장은 방문객들의 완벽한 공간이다.

사진이 담고 있는 지점의 극단으로 가보자 했다. <빈 방> 시리즈와 달리 드라마 세트장은 장소에 대한 존중이 필요 없다. 과정이 존중되는 작업이 있고, 결과가 중요한 작업이 있다.

2018년 광주시립미술관 북경창작센터에 입주해서는 대상을 파노라마 방식으로 담았다. 주제와 사진의 매체적인 특성을 결합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프레임된 가로 세로 비율을 벗어나 자신만의 임의적인 프레임을 적용하고 있다. <스톤 마켓> 시리즈는 석재상이 놓인 지세와 도시의 그리드가 가진 맥락을 고려, 가로 비율을 비정상적으로 늘였다. 

그는 지난해, 전남 광주를 떠나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했다. 자극도 없는 광주에서는 자신의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조현택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작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는 현대화 과정에서 유실되었던 삶의 밑바닥을 찍고 싶어한다. 그의 풍경은 올 때까지 온 한국 천민자본주의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의 중국 베이징 작업도 겉으로는 사회주의 탈을 쓰고 있으나 계급의 양극화를 드러내는 변형된 또 다른 자본주의 폐해를 고발한다.

예술공간 아름(수원)에서의 조현택 개인전 <집과 벽> 전시는 28일 까지이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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